한글 손 편지
책 속 인물에게 보내는 한글 손 편지
공모전 수상작
책을 읽는 게 즐거운 까닭은 책 속에 펼쳐진 세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책을 보며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칠까?
국립한글박물관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와 한글 손 글씨 쓰기의 즐거움을 알리고자
2015년부터 매년 ‘책 속 인물에게 보내는 한글 손 편지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한글 손 편지 공모전의 수상작과 어린이들이 선택한 책을 함께 소개한다.
책 속 인물에게 보내는 한글 손 편지 공모전 수상작
2020년 수상작(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대상): 박상우 어린이
안녕 민호야!
난 땅끝으로 유명한 해남이란 곳에 살고 있는 6학년 남학생 박상우라고 해. 오늘은 학교 도서관에서 빨강 연필이란 책을 읽어보며 너를 알게 됐어. 책을 읽는 동안 네가 고민했던 것들을 나 또한 고민해 본 적이 있었기에 많은 부분들이 공감 되더라구.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 모두 집에 있는 시간들이 길어졌잖아. 그러다 보니 다들 예민해져서 그런지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일들이 많아졌어. 뒤돌아서면 금방 후회하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나도 자기 전 일기를 쓸 때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곤 해. 하지만 어쩔 땐 간혹 너처럼 나만의 비밀일기를 따로 만들어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할 때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저학년 땐 일기라는 것이 선생님께 검사를 받기 위한 숙제 개념의 글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나 혼자만의 비밀도 생길 나이이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고민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야. 그러니까 난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나만의 일기를 누가 보는 것이 싫은 거야.
난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글짓기 하는 걸 아주 좋아해. 글도 자꾸 쓰다 보니 좋은 글이 써지기도 하고 성과로도 나타날 때면 기분이 너무 좋거든. 그런데 책을 보며 나도 민호 네가 주운 빨강 연필을 꼭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솔직히 글을 쓴다는 건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연필로 옮겨 적고 또 읽어보며 퇴고하고…. 그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어야만 문장이 매끄럽고 좋은 글이 만들어지거든. 그래서 내 주변에 친구들도 글짓기를 꼭 해야만 하는 수업시간엔 하기 싫어하는 모습들이 내 눈에도 보여(ㅎㅎ).
그런데 종이에 갖다 대기만 하면 저절로 글이 써지는 연필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싶을 것 같아. 민호 넌 빨강 연필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도깨비 방망일 하나 얻은 기분이었겠지? 자기가 알아서 멋진 글을 써주는 연필이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빨강 연필이 나의 경험과 내 생각이 아닌 자기 멋대로 써 내려간 글이라면 그 글이 남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어. 책에서는 빨강 연필이 쓴 글이 1등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그 글엔 너의 경험과 진심이 없으니 난 그 글은 죽은 글이라고 생각해.
민호 너도 그런 마음이 들어서 나중에 너만의 진심이 담긴 글을 쓰게 된 건 아닐까?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막힐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잘 쓴 글들을 베껴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도 해. 하지만 그렇게 써서 상을 받은들 그게 나의 실력이 아니니 기쁘진 않을 것 같아.
민호야! 오늘 난 이 책을 읽어보며 너의 고민들도 들여다보고 나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
그리고 내가 민호 너에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려주자면, 일기를 꾸준히 쓰는 일이야. 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글짓기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 이건 내 경험담이니 믿어도 돼.
그럼 난 이제 미래에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진 작가가 되어있을 민호 너를 상상하며 그만 연필을 놓아야겠다.
안녕. 민호야….
2020년 8월 5일
땅끝 해남에서 너를 응원하는 상우가.
2011년 제17회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신수현의 장편동화 『빨강 연필』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동화는 무슨 글이든 술술 환상적으로 써내는 ‘빨간 연필’을 가지게 된 민호가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고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빨간 연필을 무심코 집게 된 민호는 글짓기 숙제를 하다 연필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빨간 연필은 평소에는 일반 연필과 다를 바 없지만, 글짓기를 할 때는 흰 종이 위를 마치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며 글을 멋들어지게 써낸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물건을 깼을 때, 쓸 내용이 없어 일기나 글짓기 숙제를 하지 못할 때, 민호는 빨간 연필의 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학교와 집에서 전에 없던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빨간 연필이 멋진 글을 써낼수록 정작 민호 자신은 점점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다. 연필의 능력은 점차 밝힐 수 없는 비밀이 되고, 포장된 글은 민호를 어느새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만다. 이 작품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과의 대결이라는 우리 동화에서 드문 주제를 흥미롭고 성공적으로 탐구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아울러 어떤 조력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로서의 어린이를 설정”해 그 심리를 촘촘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믿음을 이끌어 내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출처 : 비룡소 <빨강 연필> 서평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