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신의 당링짱은 친한 친구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 결과 하노이대학교의 ‘한국어학과’ 진학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 땅을 밟은 후 ‘새로운 나’와 조우하게 된 당링짱.
방송 출연이나 유튜브 운영 등 과거의 그였다면 상상할 수 없을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와 한글을 배우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당링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나고 자란 당링짱이라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류 바람이 베트남을 강타했고, 친한 친구가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를 좋아해 함께 음악을 듣거나 춤을 따라 췄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 한국과 한글이 저의 일상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3이 되어 대입 시험을 봤고, 당시 언어 계통에 관심이 많았기에 하노이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 입학하게 됐죠.
처음부터 한국 유학을 계획한 것은 아니에요. 학창 시절 저는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인 성격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니 한글과 관련해서 다양한 활동의 장이 펼쳐지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에서 온 학생들의 베트남 봉사활동을 돕는 일을 하거나, 한국 기업이 주최하는 행사를 보조하는 등 점차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어요. 그러던 중 대학교 2학년 때 ‘금호아시아나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출전해 최종 20인으로 선발되었고, 상품으로 일주일간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어요.
미디어로만 접하던 한국에서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서울의 광화문에 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현대적인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옛 건축물들이 자리해 조화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더군요. 제 고국도 한참 발전하는 국가인데, 한국처럼 전통도 잘 보전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어요. 그렇게 베트남으로 돌아가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알아보았고, 세종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한국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저는 한국어학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한국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컸어요. 하지만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한국 노래와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와 한글을 익혔는데,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와 큰 차이가 있었거든요.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께서 사투리를 사용하거나, 발음 자체가 또렷하지 않은 분이 계셔서 진도를 따라가기 벅찰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수업 중에는 최대한 필기를 열심히 하고 조금 번거롭더라도 수업 내용을 녹음해서, 집에서 한 번 더 들으며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열정으로 무사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지내다 보니 점차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고, 이곳의 유행에 관심이 갔어요. 자연스레 방송이나 미디어, 패션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고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그중 Hanwha LIFEPLUS(한화 라이프플러스) VN에서 섭외 요청이 와 한국의 유명 관광지, 대중교통 이용법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에 출연하기도 했죠. 예전의 저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글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어느새 ‘밝고 쾌활한 당링짱’이 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이를 계기로 ‘짱 다이어리’라는 저만의 유튜브를 벌써 몇 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세종대학교의 학식, 교정 등을 주로 소개했고, 그 이후에는 한국과 베트남의 패션에 관련해서도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저의 일상생활을 담아낸 브이로그 등을 편집하며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하곤 했죠. 예전에는 누가 시켜서 무언가를 하던 수동적이었던 제가, 지금은 사람 간의 소통에 관심을 두고 뭐든 배우고 싶어 하는 능동적인 모습으로 변해있더라고요.
어느덧 한국에 온 지 6년째. 가족과 떨어져 살기에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제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지금이 참 좋아요. 지금은 화장품 회사 인턴으로 생활하며 시장 조사와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어요. 앞으로는 ‘뷰티와 패션’에 더욱 집중한 또 다른 개인 채널 운영을 준비 중이랍니다.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들도 저처럼 내일이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