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온 라훌은 ‘한류 드라마’ 대장금 등을 접하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고,
자신의 고국과 다른 듯 닮은 점이 많은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
한국어학과에 입학한 그는 노력 끝에 장학금을 받아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고,
서울에서의 오랜 삶을 꿈꾸게 됐다. 어느덧 이곳에 정착한 지 5년 차가 된
어엿한 직장인이자 어른이지만, 이따금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그럴 때면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라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라훌 쿠마르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인도에서 온 라훌 쿠마르라고 합니다. 한국을 알게 된 것은 제가 고등학생 무렵,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 덕분이었어요. 원어 그대로가 아닌 힌디어로 더빙된 영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혼자만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웃음) 그때 한국과 인도 모두 식민 지배를 받았고, 자유를 획득해 독립했지만 ‘분단국가’가 되었다는 비극적 역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두 나라 모두 광복절이 8월 15일이랍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인도는 경제적인 교류도 활발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한국어를 배워두면 어떨까 싶어 한국어학과에 입학했어요. 인도 내의 명문대학교라 부모님은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죠. 처음 한글을 익힐 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어요. 배워야 할 자음과 모음이 적은 편이었고 간단하게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에 비해 힌디어는 마치 그림처럼 복잡하게 생겼죠. 저는 특히 ‘이응’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쓰기도 외우기도 쉬운 글자가 있어 놀라웠죠.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인도에 진출한 삼성전자에 들어가 약 반년 동안 통역사로 활동했어요. 주로 휴대폰을 만드는 곳에서 한국 기술자들과 인도 기술자들의 소통을 돕거나, 서류를 번역하는 업무를 맡았죠. 책이나 매체가 아닌 실제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한국’과 ‘한글’을 대하는 저의 자세가 더욱더 진지해지는 것을 느꼈고, 이전보다 공부하고 더욱 노력해 장학생이 되었죠. 그렇게 장학금을 받고 성균관대학교 경제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마냥 바라던 ‘꿈의 나라’에 왔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어요. 가장 기본적인 음식부터 사람 사이의 소통, 그리고 문화에 적응하는 기간이 걸렸죠.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고, 그 결과 졸업하자마자 한국 회사 취업에 성공했어요. 지금 다니는 직장은 교육 회사로, 제 두 번째 일터인데요. 글로벌 비즈니스팀에서 인도 진출을 위한 전략 기획과 마케팅,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국 회사이다 보니 모든 것을 한글로 표현해야 해요. 실수하지 않으려 신경을 쓰지만, 이따금 모음 ‘ㅒ’와 ‘ㅐ’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누군가 “걔 어디에 있니?”라고 물을 때, 저는 ‘개’라고 생각해서, ‘왜 갑자기 강아지를 찾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요.
최근에는 줄임말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얼마 전 회사에서 팀장님이 ‘법카’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저는 당연히 법인 카, 즉 회사 차를 말씀하신 거라고 이해했어요. 그래서 팀장님이 계신 곳까지 회사 차를 끌고 갔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법인 카드’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해주셨고, 앞으로는 줄임말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셨어요. 이런 즐거운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특히 한국인 직장 동료들에게는 한글뿐 아니라 성실함과 책임감 같은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죠.
▲ 라훌의 가족
한국에 와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고국에 있는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워요. 그럴 때면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보며 마음을 달래곤 해요. 인도에서 한국어학과에 재학할 당시 교수님께서 추천해준 책으로, 큰 감동을 하여 지금도 가끔 읽는 책 중에 하나에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엄마에 대한 존재, 어머니의 희생과 감사함에 대해 깨닫고 평소 당연하게 여겨온 것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부모님이 보고 싶어져 전화를 드리곤 해요.
5월은 가정의 달이잖아요. 이번 어버이날에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계획을 하나 갖고 있는데요. 바로 제가 좋아하는 한글 단어를 부모님께 가르쳐드리는 거예요. 혹시 ‘다솜’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사랑’이라는 순 한글 단어인데요. 평소 어머니께는 애정 표현을 잘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무뚝뚝한 편인데, 이번 기회에 쑥스럽지만 제 마음을 전해보려고 해요. 또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께는 ‘늘해랑’이라는 단어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바로, 늘 해와 함께 살아가는 밝고 강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요.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지친 상황이지만 서로 격려하며 힘내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한국에 스며든 지 5년 차. 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지낼 예정이에요. 서울이 삭막하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거든요. 앞으로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다국적 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제가 사랑하는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다소 소박해보일지 모르지만, 한국에 대한 제 진심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답니다. 그럼,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