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혹이 달린 영감님과 노래를 좋아하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친숙한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은 혹 떼러 갔다 혹 하나 더 붙인다는 말의 유래가 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초등 국어 교과서에 꾸준히 등장하여, 『보통학교 조선어독본』과 『초등 국어 교본』에 각각 <혹 ᄯᅦᆫ 이약이>, <혹 달린 노인>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옛이야기가 실린 옛 교과서를 살펴보면서 교과서에 담긴 한글의 변화로 시대의 흐름을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근대 시기, 일제강점기나 해방 직후 교과서에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한글의 예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세기에 새로 도입된 활판 인쇄술로 한글 책을 출판했던 모습과, 한글 맞춤법이 정립되기 이전에 우리말을 바르게 표기하려 한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일본어를 국어라 일컬었기에 우리말을 가리켜 ‘조선어’라 하였습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1』(1930)에서는 반듯한 활자가 눈에 띕니다. 본문은 ‘독본체’라 일컬어지는 활자가, 상단의 주석은 ‘한성체’가 사용되었습니다. 책의 맨 앞에 각 자음이 모음과 어울려 쓰이는 경우를 나열한 자모표가 있어서 글꼴의 모양을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독본체’ 활자는 당시의 다른 활자들이 손으로 쓴 붓글씨를 그대로 옮긴 모습이었던 것과 비하여, 양식화된 구조로 고안된 새로운 글꼴을 선보인 활자로서 주목됩니다. “통일된 획의 폭으로 전체적 글꼴의 표정에 통일감이 계산된 점과 자형에 있어 조형적, 기하학적 특징이 계획된 점”으로 보아 “현재 타이포그래피에서 언급하는 학술적 의미로서의 ‘글꼴’이라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초기 한글의 새 활자”로 여겨집니다.1) 또한 당시 활자로서는 드물게 같은 모양에 크기만 다른 ‘활자 가족’으로 구성되어, 교과서에 1호(큰 글자)와 3호(작은 글자)가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상단 주석의 작은 글자는 잘 정돈된 조형미를 가져 새 활자 시대에 본문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한성체’입니다. 가로세로 폭이 균일한 정사각형 틀로 되어 있어 특히 세로쓰기로 조판할 때 가독성이 좋은 글꼴로 알려져 있으며, 해방 이후의 교과서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2』(1930)의 <혹 ᄯᅦᆫ 이약이(혹 뗀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한글 표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사를 앞말과 띄어 쓴 띄어쓰기와 더불어 ‘이야기’를 ‘이약이’라고 적은 분철 표기, ‘같이’를 ‘갓치’라고 적는 중철 표기, 된소리를 표기하는 ‘ㅅ’ 등이 눈길을 끄는데 여기서는 이 ‘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된소리를 적는 방법에는 앞에 ‘ㅅ’을 붙이는 방법(ㅺ, ㅼ), ‘ㅂ’을 붙이는 방법(ㅲ, ㅳ), 같은 자음을 겹쳐 적는 방법(ㄲ, ㄸ)의 세 가지가 혼용되고 있었습니다. 한글 정서법 마련을 위한 첫 시도인 국문연구소의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1909년)에서는 같은 자음을 겹쳐 적는 방법으로 정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1912)은 “된시옷의 기호에는 ㅅ만 사용하고, ᄡᅥ·까 등과 같은 서법은 취하지 아니함”이라 하여 ‘ㅅ’을 붙이는 방법만 허용하였습니다. 이후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은 「국문연구의정안」과 같이, 같은 자음을 겹쳐 적는 방법만 허용하여 규범이 정립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미 군정청은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학무국을 설치하고, 교수요목 제정과 교과서의 편찬을 추진하였습니다. 『초등 국어 교본』은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에서 만들고 학무국이 배포한 교과서로, 최초의 국어과 정규 교과서입니다. 상·중·하 세 권으로 이루어져, 상권은 1-2학년용, 중권은 3-4학년용, 하권은 5-6학년용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초등 국어 교본 중』(1946년)의 활자는 붓글씨의 흔적이 다소 남아 있는 모습으로, 초기 새 활자 중 하나인 ‘최지혁체’라 불리는 활자로 추정됩니다. 이 활자의 한글은 가로 폭이 세로 길이에 비해 좁아서 세로로 길쭉한 모습이며, 글자의 좌우 여백이 넉넉한 편입니다. 지금의 본문용 활자와 비교하면 모음자가 세로획인 경우 받침이 없어도 초성 자음자가 모음자의 상단에 위치하여 글줄의 흐름이 위쪽에 형성되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초등 국어 교본 중』(1946년)의 <혹 달린 노인>에서는 영감이 들어간 빈집이 있던 ‘산기슭’을 ‘산ㅅ기슭’으로 적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과서에는 <삼년고개>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그 제목은 ‘삼년ㅅ고개’로 적혀 있습니다. ‘사이시옷’ 표기에 대한 규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면 ‘ㅅ’이 낱말 사이에 혼자 나와 있는 사연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시옷’은 ‘사잇소리’, 즉 ‘산’과 ‘기슭’ 두 낱말이 만나 ‘산기슭’이라는 한 단어를 이룰 때, 두 낱말 사이에 소리가 끼어들어 [산기슥]이 아닌 [산끼슥]이 되는 것을 표시하는 방법입니다. 「언문철자법」(1930)에서는 “앞말이 종성으로 끝날 ᄯᅢ는 다른 말과 혼동하기 쉬운 경우에 한하여 중간에 「ㅅ」을 씀.”이라 하여, ‘산ㅅ기슭’으로 적도록 했습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은 “사이 ㅅ은 홀소리 아래에서 날 적에는 우의 홀소리에 ㅅ을 받치고, 닿소리와 닿소리 사이에서는 도모지 적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받침이 있는 ‘산’ 뒤에는 ‘ㅅ’을 적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사이시옷은 앞말이 모음인 경우에만 받침으로 쓰게 되어, 홀로 적는 ‘ㅅ’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기의 국어 교과서에서는 이처럼 근대 인쇄술에 적응한 한글의 양상으로서의 새 활자의 모습과, 한글 맞춤법이 정립되어 통용되기 전에 한글을 적었던 방식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 <친구들아, 잘 있었니? - 교과서 한글 동화>(~2021.10.10.)에서는 여기서 함께 살펴본 교과서는 물론, 더 많은 다양한 교과서와 그 속에 담긴 옛이야기들을 직접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성자: 강연민(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1) 박지훈. 2011. “새 활자 시대 초기의 한글 활자에 대한 연구.” 글짜씨, 3(1), 723-757.
2) 박지훈·이용제. 2015. 『활자 흔적 – 근대 한글 활자의 발자취』. 도서출판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