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제 97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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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빛 한지 배경에 전통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펼쳐져있는 『언해태산집요』와 『언해태산집요』 표지가 함께 합성되어있다. 『언해태산집요』 내지는 빛바래있으며, 세로로 긴 칸 안에 알아보기 힘든 한자들이 적혀있다. 짙은 갈색빛의 『언해태산집요』의 표지는 심하게 낡았으며, 왼쪽에 ‘태산집요’가 한자로 세로쓰기 되어있다.

소장품 이야기

허준의 알아 두면 쓸모 있는 임신·출산 지식,
『언해태산집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도끼를 가만히 임신부가 눕는 자리 밑에 몰래 넣고 알리지 말라.
만약 믿지 못하겠으면 알 품는 닭의 둥지 아래에 도끼를 달아 두면 모두 수컷이 된다.

딸을 아들로 바꾸고 싶다면 임신부의 이부자리 밑에 도끼를 몰래 넣으면
된다는 말, 믿기시나요? 게다가 이 말을 믿지 못하겠는 사람은
닭에게 시험해 봐도 좋다고 큰소리를 치니 황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이 이야기가 조선 시대의 명의 허준이 지은
의학서 『언해태산집요』에 소개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의 허준, 왕명을 받들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짓다

허준(許浚, 1539~1615)은 『동의보감』을 지은 사람이자, 1999년대 말 전광렬 배우가 연기했던 드라마 <허준>으로 대중에게 매우 친숙한 인물입니다. 이 유명한 허준이 1608년 선조(宣祖, 조선 제14대 왕)의 명령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학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라는 책입니다. 한글박물관에 소장된 『언해태산집요』는 1608년의 원본을 그대로 번각(飜刻, 한 번 새긴 책판을 본보기로 삼아 그 내용을 다시 새김)하여 17세기 이후에 다시 찍어낸 것입니다.

『언해태산집요』 앞표지. 짙은 갈색빛으로 심하게 낡았으며, 왼쪽에 ‘태산집요’가 한자로 세로쓰기 되어있다.▲ 『언해태산집요』(17세기 이후) 앞표지 『언해태산집요』의 시작 부분. 세로로 된 칸에 한자와 한글이 섞여 적혀있다. 그중 도입부에 ‘어의 신 허준이 왕명을 받들어 짓다’라는 내용의 문장이 한자로 적혀있으며, 그 부분이 확대되어 있다.▲ 『언해태산집요』(17세기 이후) 시작 부분

제목 그대로 임신(胎)과 출산(産)에 대한 지식을 모으고(集) 간추려(要) 한글로(諺解) 쓴 이 책에는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낳은 후까지의 다양한 처방과 치료법이 실려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도 한문으로 쓴 『산서(産書)』, 『태산요록(胎産要錄)』, 『임신최요방(妊娠最要方)』 등 산부인과계 의학서가 있었지만, 정작 그 내용을 필요로 하는 부녀자들이 읽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기존 의학서들에 실린 내용을 추려 누구나 읽기 쉬운 한글로 풀어 준 것입니다.

『언해태산집요』의 주요 내용

항목 풀이 비고
1) 구사(求嗣) 자식 구하여 낳는 법  
2) 잉태(孕胎) 아기 밴 징후  
3) 태맥(胎脈) 잉태한 맥  
4) 험태(驗胎) 태기 시험하는 법  
5) 변남녀법(辨男女法) 남녀 구별하는 법  
6)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법  
7) 오조(惡阻) 자식이 궂게 서는 병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심한 입덧
 
8) 금기(禁忌) 임신 중 하지 말아야 할 것  
9) 장리(將理) 임신 중 몸조리 하는 법  
10) 통치(通治) 출산 전후 모두 사용하는 처방  
11) 안태(安胎) 태동을 안정시키는 법  
12) 욕산후(欲産候) 출산하려는 징후  
13) 보산(保産) 난산을 막는 법  
14) 십산후(十産候) 열 가지의 해산 징후  
15) 양법(禳法) 재앙을 물리치는 법  
16) 반산(半産) 열 달이 안 되어 유산하는 증상  
17) 찰색험태생사(察色驗胎生死) 임신부의 안색을 살펴 태아의 생사를 아는 법  
18) 하사태(下死胎) 배 속에서 죽은 태아를 나오게 하는 법  
19) 하포의(下胞衣) 태반을 나오게 하는 법  
20) 자간(子癎) 임산부의 간증
*경련, 혼수를 동반하는 후기임신중독증
출산 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
21) 자번(子煩) 임산부의 번열증
*열, 갈증, 구역질, 수면 불안을 동반하는 병증
22) 자종(子腫) 임산부가 붓는 증상
23) 자림(子淋) 임산부의 임질
24) 자리(子痢) 임산부의 이질증
25) 자학(子瘧) 임산부의 학질
26) 자수(子嗽) 임산부가 기침하는 증상
27) 자현(子懸) 임산부의 태기가 가슴에 차오르는 증상
28) 감한(感寒) 임산부의 감기
29) 불어(不語) 임산부가 말하지 못하는 증상
30) 아재복중곡(兒在腹中哭) 태아가 배 속에서 우는 것을 고치는 법
31) 복중종명(腹中鍾鳴) 임산부의 배 속에서 종소리가 나는 증상
32) 아침통(兒枕痛) 출산 후의 아침통
*해산할 때 피가 다 나오지 못하고
자궁에 남아서 덩어리를 이루어 아픈 병
출산 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
33) 혈훈(血暈) 출산 후에 어지러운 증상
34) 혈붕(血崩) 출산 후에 피가 흐르는 증상
35) 육혈(衄血) 출산 후 코에 피 나는 증상
36) 천급(喘急) 출산 후에 숨이 차는 증상
37) 해역(咳逆) 출산 후에 딸꾹질하는 증상
38) 불어(不語) 출산 후에 말하지 못하는 증상
39) 발열(發熱) 출산 후에 열이 나는 증상
40) 유현(乳懸) 출산 후에 젖이 늘어지는 증상
41) 음탈(陰脫) 출산 후에 음문이 나와 들어가지 않는 증상
42) 과월불산(過月不産) 산달이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증상  
43) 하유즙(下乳汁) 해산 후 젖을 나오게 하는 법  
44) 임산예비약물(臨産豫備藥物) 출산 달에 미리 준비해 둘 약  
45) 첩산도법(貼産圖法) 산도 붙이는 법  
46) 안산장태의길방(安産藏胎衣吉方) 안산과 태반을 간직하기 좋은 방향  
47) 차지법(借地法) 아기 낳을 땅 빌리는 축문  
48) 월유태살소재(月遊胎殺所在) 달마다 도는 태살 있는 곳  
49) 부초생소아구급(附初生小兒救急) 갓난 아이 구급법(부록)  

임신과 출산의 다양한 징후들과 임신 및 출산기에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병증들을 차례로 나열하고, 각각에 적절한 약과 치료법을 안내하여 실용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 항목에는 처방 내용의 원전을 밝히고, 한문으로 쓴 원문과 이를 우리말로 번역한 한글 문장을 함께 병렬 제시함으로써 한문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화장실 가는 임신부를 남편이 부르면 생기는 일

『언해태산집요』 내지 중 일부분. 세로로 된 칸에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적혀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랐으며 끝부분이 얼룩져있다. 「ᄉᆞ나ᄒᆡ 간나ᄒᆡ 분번ᄒᆞᆯ 법이라(변남녀법, 辨男女法)」
ᄯᅩ ᄀᆞᆯ오ᄃᆡ ᄌᆞ식 ᄇᆡᆫ 겨집이 뒤ᄭᅡᆫᄂᆡ 들 적을 보와 남진이 뒤흐로셔 ᄲᆞᆯ리 브르면 왼녁크로 머리 도ᄂᆞ니ᄂᆞᆫ ᄉᆞ나ᄒᆡ오 올ᄒᆞᆫ녁크로 도ᄂᆞᆫ 니ᄂᆞᆫ 간나ᄒᆡ라


「남녀 구별하는 방법」
(󰡔맥경󰡕에서) 또 말하기를, 임신부가 뒷간에 갈 때 남편이 뒤따라가며 급히 불러서 부인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자아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자아이이다.

『언해태산집요』를 보면 배 속의 아이가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그 성별을 가리는 방법은 위와 같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임신부를 남편이 뒤따라가서 급히 불렀을 때 고개를 돌리는 방향에 따라 성별을 구분한 것입니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초음파 사진을 통해 태아의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임신 중에 고기가 당기면 아들이고 과일이 당기면 딸이라거나, 임신부의 소변에 베이킹소다를 넣은 후에 거품이 생기면 아들이라는 등의 속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태아의 성별을 궁금해하는 부모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언해태산집요』 내지 중 일부분. 세로로 된 칸에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빼곡하게 적혀있다. 종이는 빛바랜 누런색이다. 「ᄌᆞ식 나ᄒᆞᆫ 후애 피 흐르ᄂᆞᆫ 증이라(혈붕, 血崩)」
득효방의 ᄀᆞᆯ오ᄃᆡ 산후에 피 만히 나 아니 긋거든 궁긔탕을 듕히 지어 ᄇᆡᆨ샤약 가입ᄒᆞ야 달혀 머기라 만일 ᄇᆡᆺ기슭이 턍만ᄒᆞ여 아ᄑᆞ면 이ᄂᆞᆫ 간장 ᄒᆡ여딘 디니 고티기 어려우니라


「출산 후에 피가 흐르는 증상」
󰡔득효방󰡕에서 말하기를, 산후에 피가 많이 나고 그치지 않거든 궁귀탕의 양을 많게 지어 작약을 넣고 달여 먹여라. 만약 아랫배가 불룩해지고 아프면 이는 간장이 상한 것이니 고치기 어렵다.

출산 후에 피가 흐르는 증상, 즉 산후 출혈은 오늘날에도 전체 모성 사망률의 20~3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무서운 증상입니다. 『언해태산집요』를 보면 이럴 경우에는 천궁(川芎)과 당귀(當歸) 등으로 만든 궁귀탕에 작약을 넣고 달여먹으라는 치료법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산 또는 출산 후에 피를 많이 흘린 경우 궁귀탕을 써서 이를 다스리는 처방이 있다고 합니다.

치료법을 몰라 고생하는 사람이 없도록, 의학 지식은 쉬운 한글로

오늘날의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백성들을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의 방법을 추려 쉽게 보급한 것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병증이 있어도 그에 필요한 약과 치료법을 몰라 고생하거나 목숨을 잃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긴 선조의 따뜻한 마음, 그 뜻을 받들어 다양한 의학 지식을 정리한 허준이라는 인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한글’이라는 쉬운 글자가 있었기에 『언해태산집요』라는 훌륭한 의학서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작성자: 김미미(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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