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5호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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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는 낡아 보이는 『깔깔우슴』 책 표지가 있다. 표지 속엔 웃음 짓고 있는 옛날 사람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책 왼쪽엔 흰색 저고리와 짙은 갈색 치마를 입은 여성 그림과 강아지 그림이 있으며, 책 오른쪽엔 짙은 갈색 교복을 입은 남성 그림이 있다.

소장품이야기 『깔깔우슴』,
『팔도재담집』,
경향신문 속 「우ᄉᆞᆷ거리」

3월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지만, 조국 광복을 위해 만세를 부른 3.1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암울한 식민지 조선이었지만, 긴장을 풀어줄 웃음은 필요하다.
지금처럼 쉽게 오락거리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웃음을 위한 책들이 유행했는데 그것을 “재담집”이라 부른다.


1916년 남궁설이 편집한 『깔깔우슴』속에는 70여 편의 짧은 재담이 수록되어 있다.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익살스러운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 세태를 반영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갑작스럽게 근대를 맞이한 식민지 조선인들이 신식 문물을 접하면서 벌어졌을 법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실려 있다.

『깔깔우슴』 책 표지 사진. 표지 속엔 웃음 짓고 있는 옛날 사람들 그림이 그려져 있다. ▲ 『깔깔우슴』,
남궁설 편집(1916년 한성서관 발행)



고것 참 신통하게 만들었네

시골 생원이 서울을 올라왔는데 자기의 사진을 박아 가지고 집에 가서 구경시킬 차로
사진관에서 관 쓰고 도포입고 교의에 걸터앉아서 사진을 박아가지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꺼내어
부인을 주며 왈

“이런 신통한 것 보았소? 구경하오. 누구 같소”

부인이 받아본 즉 자기의 남편이라 하하 웃으며 왈

“에이 그 그것이야 신통도 하지 엇지 이렇게 만들었소? 이제는 영감이 둘이 되었네.” 하고
또 아들을 주며 왈

“어서 보아라” 아들이 받아 “양인이 만들었습니까?”

“양인이 만들었단다.”

“아~고놈 잘도 만들었구나. 귀신이 통곡을 하겠다.”

손자가 또 보더니
“이것을 양인이 만들었어요? 참 기득하다마는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그 양인이 잘 못 만들었군.”

그 양반이 참다못해 에그 이 무식한 후레자식들

사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손자가 사진 속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으나 대답이 없자, 양인이 잘못 만들었다 말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를 보고 무식하다고 쏘아 붙인다. 신문물에 대한 무지함을 웃음으로 승화한 점은 씁씁하지만, 당시 《깔깔웃음》은 1926년까지 8판이 발행될 정도로 인기를 끌며 식민지 조선인들의 웃음을 코드를 저격했던 독서물이었다.

『팔도대담집』 책 표지 사진. 표지 속 상단엔 여성이 함경도부터 경상도까지 8도가 적인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하단엔 옛날 집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그 아래엔 집 대문 밖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 『팔도재담집』,
강의영 편찬(1918년 영창서관 발행)



마찬가지로 오락적 성격이 강했던 『팔도재담집』도 비슷한 시기인 1918년에 간행되었다. 표지에 여성이 함경도부터 경상도까지 8도가 적인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전국 각지의 재미난 이야기가 실려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독자들에게 심어 준다.

촌 학도(學徒) 하나가 대학교에 가서 지리(地理)를 공부하는데 교사의 말이 땅이 돌아다닌다
하였더니, 이 학도가 이상이 여겨 집에 와서 말뚝 네 개를 만들어서 집 뒤에 있는 연못 네 귀에
단단히 박고 지구가 돌기를 기다릴 새, 그 부친이 보고 왈(曰),

“오늘은 왜 학교에도 아니 가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즉, 대답하야 왈,

“교사의 말씀이 지구가 돌아다닌다 하시기에 하 이상하여 한번 시험코자 하나이다.”

그 부친도 역시 무식한 사람이라. 그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겨 왈,

“그러면 네 귀에 말뚝을 박았으니 더군다나 돌 수가 있겠느냐? 그리 말고 달리 표(表)를 하여
놓고 보아라.”

『팔도재담집』에서도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근대를 맞이하며 쏟아지던 신문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들이 겪는 웃기고도 슬픈 장면들이 희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서양의 과학적 지식이 유입되면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쓰는 촌에 사는 부자의 이야기는 신문물을 쉽고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당시 식민지 조선인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무식한” 부자의 이야기는 조선인의 처지를 조선인 스스로가 비웃는 자조적인 웃음 코드였을지도 모른다.



1906년 경향신문에 실린 『우ᄉᆞᆷ거리』 사진. ▲ 『 우ᄉᆞᆷ거리』경향신문(1906.12.21.)



식민지 조선인의 계몽을 위해 앞장섰던 신문 매체 중 『 경향일보』에도 웃긴 이야기를 싣는 재담 코너 『 우ᄉᆞᆷ거리』가 있었다. 『 우ᄉᆞᆷ거리』는 1906년 10월 19일, 『 경향일보』가 창간하고 나서 2개월 뒤인 1906년 12월 21일부터 고정란으로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1907년 3월 1일부터 『 우ᄉᆞᆷ거리』가 잠깐 사라지지만 1907년 10월 18일에 다시 고정란으로 부활한다. 경향신문이 폐간까지 220호가 발행되었고 『 우ᄉᆞᆷ거리』를 통해 소개된 재담이 179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 우ᄉᆞᆷ거리』는 경향일보의 틀을 유지하는 주요한 지면이었던 셈이다.

웃음 끝에 눈물

“웃음”은 즐겁고 재미날 때만 나는 것이 아니다. 남들에게 조롱을 받는 웃음은 냉소라고 하여 찬웃음이라 표현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나오는 웃음 실소도 있다.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는 웃음인 비웃음도 있다. 웃음은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다. 사지 말아야 할 것이 비웃음이요, 웃음이다. 속담 중 “웃음 끝에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식민지 시기 재담 속에는 웃음과 눈물이 섞여 있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재담”을 즐기며 노곤한 삶을 달랬을 것이다.

작성자: 서주연(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