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구세 영수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김장연이 낸 세금은 어디로 갔을까?
- 인구세 영수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4월 하면 무슨 날이 떠오르시나요?
4월 5일 나무를 심는 식목일도 있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날이 또 있는데요.
바로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입니다.
1919년 3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민중의 강한 독립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던 3·1 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원동력이 되어 같은 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며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고 명시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떻게 자금을 마련했을까요?
김장연이 낸 세금 영수증을 통해 이 비밀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이 자료는 대한민국 1년(1919) 8월 28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김장연에게 발급해 준 인구세 영수증 제168호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령 제3호 인구세 시행세칙 제4조에 의하여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수세(收稅, 세금을 걷음) 사무를 집행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 1년은 1919년을 가리키는데요, 이를 통해서도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지금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왕이 주인인 군주의 나라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인 국민의 나라가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나라 이름입니다.
세금을 납부한 김장연의 서명과 이를 발급해 준 수세총위원(收稅總委員) 백일규(白一圭)의 서명이 있으며 금액은 1원입니다.
인구세를 납부한 김장연은 누구일까요?
김장연(金長淵, 1881~1943)은 1903년 19세 때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한인 이민자로,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여러 일을 하며 생활하다가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63세로 별세하였습니다.
위 자료는 구미외교위원부(歐美外交委員部)에서 김장연에게 발급한 신분증입니다.
앞면에는 김장연의 이름이 영어와 한글로 적혀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내용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구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무부가 걷은 세금의 하나입니다.
만 20세 이상의 남녀 1인에게 일정한 금액(1원)을 연 2회로 나누어 내게 하는 국민세로 임시정부 수립 초기에 주된 자금 마련 수단이 되었습니다.
미주 최대의 한인 단체인 대한인국민회는 미주 동포들의 인구세를 거두어서 이를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또 어떤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했을까요?
인구세만으로는 임시정부를 운영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하거나 애국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독립공채는 일종의 '독립을 위한 저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람들이 돈을 빌려주면 나중에 독립 후에 더 큰 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었죠.
애국금은 국내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자발적으로 돈을 보내준 일종의 후원금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부금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비, 외교 비용, 군사 훈련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김장연은 인구세를 납부한 날에 독립 의연금도 함께 보내며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위 자료는 1919년 8월 28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발급한 김장연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입니다.
김장연에게 45원을 받고, 대한인국민회의 특별의원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입니다.
영수증 위쪽에 있는 일제의 칼에 맞서 독립을 외치는 여인의 모습과 ‘우리는 자유를 위하여 마지막 방울의 피가 흐르기까지 싸우기로 결심’하고, ‘우리는 장래 자손에게 비참과 이욕(利慾)을 끼쳐주지 않고 영원한 자유 행복을 유전하기로 결심’했다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김장연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자식들 각각의 이름으로도 3·1운동 독립 의연금을 냈는데요, 이를 합산하면 총 100달러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이 일로 재미 한인단체 신문인 『신한민보』 1919년 8월 30일 자에는 김장연의 가족 모두가 한인 동포의 모범이 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김장연이 남긴 영수증 등은 당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의 애국심과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장연 일가의 자료는 미국 이민자 후손인 ‘레슬리 송’이 집안 대대로 소중히 보관되었던 귀중한 자료를 기증한 것입니다.
이 기증 자료를 통해 미국으로 떠난 한인들의 당시 이민 생활 모습과 독립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도왔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봄꽃이 흩날리는 4월, 고된 타지 생활 속에서도 독립 자금을 보낸 김장연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모습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