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염원을 노래한 민족시인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시인의 유고 시집으로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초간본을 간행했다. 정지용의 서문으로 시작되는 책자에는 <서시(序詩)>를 포함 총 31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서시는 본래 제목이 없는 시인데, 시집을 여는 서문격의 시였기에 사람들이 ‘서시’라 불렀고, 이것이 정착된 명칭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읽고
- 성은규(으뜸상) -
내 마음의 별이 된 윤동주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윤동주 선생님, 저는 천안에 사는 성은규 라고 해요. 저는 선생님의 시집을 읽으면서 사랑하고 감동하게 되어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5학년 때 도서관에서의 1박2일 캠프에 참여했다가 선생님의 아름다운 시를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어요. 특히 ‘서시’와 ‘별 헤는 밤’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어요. 서시의 구절 중에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해요. 이런 명시들을 남기시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더 오래 사셨다면 그토록 바라셨던 우리나라의 독립도 보셨을 거고 더 많은 명시들을 남기셔서 우리나라의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많이 올려주셨을 거라 생각돼요. 저에겐 선생님이 우리나라 첫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더 오래 사셔서 작품 활동을 하셨다면 가능하셨으리라 생각돼요.
시를 읽고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어 선생님과 관련된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보았어요. 그럼에도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 드려요.
첫 번째, 선생님은 어릴 적에 성격이 활발했나요? 아니면 차분하고 조용했나요? 시를 쓰는 데는 어떤 성격이 좋을까요?
선생님께는 몽규라는 사촌 형이 있었는데 이분은 활발하고 독립심이 강했지만 선생님은 너무 마음이 여리고 착했다고 들었어요. 보통 어른들은 사내아이가 힘이 강하고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선생님은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며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어요. 선생님의 성격과 인품은 ‘무’가 아니라 ‘덕’이라는 것 이예요. 사촌 몽규형이 독립운동을 하는데 자신은 마음이 여리고 용감하지 못해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시를 써서 총이 아닌 연필로 일본에게 저항하고 독립운동을 하셨으니까요. 저는 그런 선생님이 부럽고 또 자랑스러워요.
두 번째, 공부하고 시를 쓸 때 가장 생각나는 가족은 누구였나요? 선생님이 학창시절,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북간도에 계셨어요. 그러면 누가 가장 보고 싶었나요? 독립운동을 목숨 걸고 하신 몽규 형, 아는 게 힘이라고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고 선생님을 가르치신 아버지, 선생님이 북간도에 계실 때 의식주를 해결 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어머니. 이 분들을 다 보고 싶으셨겠지요?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어머니를 가장 보고 싶으셨을 것 같아요.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에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뜻은 ‘하늘에 있는 별처럼 어머니가 멀리 있어 그립다’라는 뜻처럼 느껴졌어요.
세 번째,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을 때 의문의 주사를 맞았다는데 사실인가요? 선생님께서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셨어요. 그 시기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고 점점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지요. 그 때 일본에서는 사람을 마취시키지도 않고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께서는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주 건강하고 멀쩡했는데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해요. 정말 전해오는 기록처럼 형무소에서 의문의 주사를 맞아서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나요?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음에도 위안부 할머니들께도 아직까지 진심에서 하는 사과가 없어요.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과를 하고 비를 세워 고인들에게 잘못을 사과했다고 해요.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널리 알려 선생님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사과하는 날이 빨리 오도록 제 위치에서 열심히 생활하려고 해요. 우리 국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신 분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과하는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선생님과 그 시절 우리 국민들이 바라던 광복절이 며칠 안 남았어요. 그 시절 독립투사들이 숨겨 가지고 다니셨던 태극기를 저는 자랑스럽게 게양하고 선생님과 독립을 위해 싸우셨던 많은 분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할게요. 제게 시도 재미있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려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생각이 멋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히 지내세요. 안녕히 계세요.
2018년 8월 3일
은규 올림
전쟁과 가난 속에서 피어난 희망, ≪몽실언니≫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대표적인 소설 ≪몽실언니≫(1984)는 소녀 몽실이의 고단한 삶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해방과 한국전쟁, 극심한 이념 대립 등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작은 어린이의 사실적인 기록이면서, 처참한 가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감싸 안은 한 인간의 위대한 성장기다.
소설은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어린 몽실이가 부모를 잃고 동생 난남이를 업어 키우는 고난의 과정을 그려냈으며, 지난 2012년 출간 100만 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가진 것 없고 바라는 것 없지만, 순박한 마음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몽실의 모습에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견뎌낸 전쟁의 아픔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몽실언니≫를 읽고
- 황수빈(버금상) -
몽실언니에게
몽실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4학년 황수빈 이라고 해요. 아기를 업고 있는 책 표지의 그림을 보며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하면서 책 표지를 넘겼어요. 좀 예전의 이야기라 그런지 처음 듣는 말과 단어들이 있어서 엄마께 여쭤가며 읽었어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세상에…. 어떡해….”라는 말을 계속 입에 담으며 읽었답니다. 옆에서 동생이 “언니, 그거 무슨 내용이야?” 라고 물었지만 동생에게 이야기 해 주지 못했어요.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동생에게 이야기해주지 못했어요. 설명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엄마, 아빠께 말씀드렸더니 예전에 우리나라가 많이 가난했었다고 이야기 해 주셨어요. 5월에 필리핀 세부에 여행가서 가난한 모습을 보고 놀랐었는데 몽실언니가 살았던 시절에는 세부보다 더 가난했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렇게 가난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몽실언니는 항상 따뜻한 마음씨와 배려심을 잃지 않았지요. 어린 나이인데도 어떻게 이해심이 깊을 수 있나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과 행동을 보여주고 어린 동생들을 하나하나 잘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저는 지금 11살인데도 8살 몽실언니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자기 자식이 태어나자 몽실언니에게 나쁘게 대한 새 아빠, 전쟁터에 나가 몸을 다쳐 돈을 벌 수 없는 아빠,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몽실언니가 키워야 했던 어린 난남이 등 모두가 몽실언니에게는 짐이었을 것 같은데도 한 명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한 몽실언니. 흑인 아기를 살려주려고 안고 데려오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났어요.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사람도 많이 죽고 모두가 불행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동생 난남이를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난남이가 죽으면 어쩌나 하고 계속 걱정했었어요. 몽실언니가 옆에 있었으면 제가 꼭 안아주었을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나와 정말 다행이었어요.
몽실언니! 저는 이제부터 항상 마음속에 언니의 따뜻한 마음씨를 품고 살려고 노력할게요. 착하고 바른 성품을 지니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면서 몽실언니를 본받으며 살게요. 몽실언니께서도 더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날이 많이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18년 7월 30일
몽실언니를 사랑하는 황수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