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은 올해 총 4회의 인문학 특강을 통해 한글과 한글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9년의 마지막 강연에서는 최황순 수어통역가에게 농인들의 언어 ‘수어’와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간단한 수어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수어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12월 5일에 수어를 주제로 하는 강연 <한국 제 2의 언어 수어, 그리고 수어 속에 나타나는 한글의 자취>를 개최했다. 강의실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수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여느 강연과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와 더불어 수어로 자기소개를 한 최황순 수어통역가는 가장 먼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농인과 청인, 이들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수화와 수어의 용어상 의미 차이를 짚어주었다. 수화가 말하기만을 강조한 용어라면, 수어는 말하기, 쓰기, 읽기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들이 구화를 대신하여 몸짓이나 손짓으로 표현하는 의사 전달 방법이자 우리나라 공용어라는 차이점이 있다. 아울러 그는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대해 소개하며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농인과 한국수화언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고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영어도 아닌 ‘수어’가 우리나라의 공용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수강생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한글과 지문자, 수어 속 한글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문자는 1947년 국립서울맹아학교 초대교장 윤백원 선생이 농아인을 위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모양에 따라 창안한 지문자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강생들은 한글 지문자에 대한 배경 지식과 함게 지문자를 직접 배워보면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등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한 뒤 엄지와 검지를 펴서 90도 각도가 되게 내리면 ‘기역’(ㄱ)이 되고, ‘따봉’하듯 엄지를 하늘로 세우면 ‘히읗’(ㅎ)이 된다. 이렇게 모음과 자음을 쉽고도 재미있게 습득한 뒤 ‘국립한글박물관’이라는 단어를 수어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수어는 여러 정보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바깥에서 안쪽으로와 같이 의미 전달에 ‘방향’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언어임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최황순 수어통역가는 수어란 자국어와 그 나라의 문화 등이 섞여 사용되기 때문에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고 설명하며 “같은 영어권 국가인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도 각자 다른 형식의 수어를 구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1980년대 이후 한자 문화가 사라진 뒤 한글을 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 현상이 수어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노원, 강남, 금천구, 동작구’ 등을 수어로 표현해 알려주었다. 이밖에도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헉’이나 ‘헐’과 같은 수어는 표정과 함께 사용한다고 소개해 수강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최황순 수어통역가는 감각 기관의 특성에 기인한 언어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고, 한국에는 한국어와 수어 두 가지 공용어가 존재하며 다양한 언어 사용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길 바란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수어 통역에 대해 강연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수어는 한국의 언어라는 것, 수어는 한국 음성 언어가 아니라는 것, 농인을 한국의 또 하나의 언어 사용자로 봐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어에 관련된 잘못된 정보나 오류가 바로잡혔으면 합니다. 오늘 함께한 수강생 분들이 우리나라 공용어인 수어를 보다 가깝게 여겼으면 좋겠고, 나아가 더 많은 분들이 수어를 배우셨으면 합니다.” 최황순 수어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