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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20. 1. 제 78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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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비경에 둘러싸인 문화 힐링 도시
    최초의 한글 소설 ≪설공찬전≫이 쓰인 상주로 떠나다

    상주는 낙동강 어원의 발생지로,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지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청정지역이다. 그림처럼 펼쳐진 넓은 들과 풍부한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도 시원한 물결이 흘러 들어와 일상에서 쌓인 답답함이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최초의 한글 금서 ≪설공찬전≫이 태어난 쾌재정을 돌아보며
    소설의 저자 채수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상주의 다채로운 문화를 만나볼 수 있는
    자전거박물관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임란 북천 전적지를 함께 다녀와 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금서 ≪설공찬전≫의 저자 채수를 만난 경북 상주

    조선 초기 문신이며 문장가 채수는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이 소설을 써서 조선 최대의 필화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다. 필화 사건이란 어떠한 작품을 쓴 인물이 권력이나 기타 세력의 핍박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일을 말한다. 윤회사상을 다뤄 조선 최초의 금서로 규정되어 탄압받은 소설 ≪설공찬전≫ 원본은 한문으로 쓰여 모두 소거되었으나 국문 필사본이 있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쾌재정의 전경. 돌담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 안에 검은색 기와의 작은 목조 건물이 자리해있다. 가운데로 보이는 나무문은 잠겨있고, 그 위 현판에는 쾌재정(快哉亭)이라 한자로 적혀있다.

    작품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인공 공찬의 혼령이 전하는 저승 소식인데,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 대목이다. 이는 연산군을 축출하고 집권한 중종정권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폭군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보필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신하의 바른 도리라는 평소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여성이라도 글만 할 줄 알면 얼마든지 관직을 받아 잘 지내더라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여성을 차별하는 조선의 사회체제를 꼬집은 것이며, 영혼과 사후세계의 문제를 끌어와 당대의 정치와 사회 및 유교 이념의 한계를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문 필사본은 1997년에 발견됐는데, 후반부가 없어진 채 13쪽까지만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보다 100여 년 전에 쓰인 국문 소설이자, 소설로는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에도 올랐으니 소설의 대중화를 이룬 첫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소설이 탄생한 곳이 바로 상주군 이안면 가장리에 있는 쾌재정이라는 정자이다. 이곳은 채수가 낙향하며 남은 여생을 보낼 요량으로 지은 곳으로, 채수의 삶과 학문이 그대로 녹아 있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산정형(山頂形) 정자로서 쾌재정이 보여주는 익공 형식과 화반 장식, 처마 앙곡 등의 수법은 건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최초의 한글 소설인 ≪설공찬전≫이 이곳에서 지어졌다는 역사성을 인정받은 문화재이기도 하다.

    조선의 문장가를 기리는 마음, 나재 채수 신도비임호서원

    쾌재정 근처에는 채수를 기리는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석을 일컫는다. 비는 약간 엉성하게 표현된 듯 보이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시대 전기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양면과 음면에 양감이 뚜렷한 두 마리의 용과 구름무늬를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상주 지역에 남아 있는 신도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어 채수는 1703년(숙종 29)에 임호서원이 건립되어 그곳으로 제향 되었다. 임호서원은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표연말 등 5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곳이다. 이렇게 소개한 세 지역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세상을 향해 발언한 채수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곳이자, 그의 발자취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나재 채수 신도비의 모습. 붉은 기둥과 붉은 나무 담을 가진 기와지붕으로 보호받고 있다.

    나재 채수 신도비 하단에 돌로 조각돼 있는 해태의 모습

    새로이 지어진 신도비의 모습. 검은 돌각 아래 거북이가 조각돼 비석을 떠받들고, 그 앞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적인 두 개의 돌판이 자리해 있다.

    ▲ 나재 채수 신도비

    상주의 다양한 얼굴, 자전거박물관임란 북천 전적지

    더욱이 상주는 낙동강 어원의 발생지로,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지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청정지역이다. 이러한 천혜의 비경을 더 오래도록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자전거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전거를 즐겨 타는 상주는 전국 최초로 2002년에 자전거박물관을 개관했다. 기획전시실에는 매년 새로운 주제로 전시가 꾸려지며 2층 상설전시관은 역사 자전거 찾기, 안전 자전거 찾기, 건강 자전거 찾기, 자전거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자전거 역사부터 자전거 체험까지 다양하게 자전거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지하 1층 자전거 대여소에서는 이색 자전거를 박물관 전정에서 체험할 수 있고, 자전거 점검도 가능하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어 짧은 무동력 여행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남잔자전차점이라 적힌 옛 자전거점의 현판이 전시돼 있고, 그 앞으로는 최신식 로드 자전거(경기용 사이클)이 두 대 전시돼 있다. 천장에도 두 대의 자전거가 높게 전시돼 있다.

    세 대의 자전거와 전시판 사이를 돌며 자전거 전시관을 둘러보는 다섯명의 시민들.

    또한 상주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상주 임란 북천 전적지는 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호국의 성지이기도 하다. 1592년에 일본군 주력 부대인 소서행장이 이끄는17,000명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침공해 왔다. 이에 성벽을 지키던 순변사 이일은 싸움도 하기 전에 자기 목숨이 아까워 성을 버리고 도주해 버리고 말았다. 이때 상주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 종사관인 윤섬, 이경류, 박호 등의 경군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 의병장 김준신 등이 800여 사병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 열심히 싸웠으나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되었다. 이를 치하하기 위해 선조는 상주 전역에 복호(부역의 면제)를 내렸고, 이곳은 왕의 은전을 입은 유일한 지방이 되었다.

    
상주 임란 북천 전적지를 계단 아래서 올려다본 모습. 커다란 기와 건물 돌담 아래로 돌계단과 네 개의 비석이 자리해 있다.

    내부 전시장의 모습. 상주전투라 적힌 판 위에 글자들이 적혀있고, 아래로는 당시 사용되던 화포, 장창 등의 무기가 전시돼 있다.

    ‘상주’ 하면 대부분 곶감을 떠올리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상주는 곶감 외에도 사색을 절로 하게 만드는 자연풍경과 다채로운 테마가 공존하는 알찬 여행지이다. 새해를 맞이해 마치 선물 포장지처럼 즐거움이 겹겹이 쌓여있는 상주로 떠나보면 어떨까.

    여·행·가·이·드

    상주 자전거 박물관

    경상북도 상주시 용마로 415

    • · 이용 안내 : 전시실(09:30~ 17:00), 자전거 대여소(10:00~ 17:00 (16:30 신청 마감) 5~9월은 30분 연장 운영))
    • · 문의 : 054-534-49738

    나재 채수 신도비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상주 쾌재정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230-1, 함창로 41-61

    상주 임란 북천 전적지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3123

    • · 문의 : 054-533-2210

    상주 임호서원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