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6호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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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과 흰색 타일로 된 벽이 있는 배경 안에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이 여러 권 나열돼 있다. <글모음> 왼쪽엔 흰색 의자에 하늘색 상의, 파란색 하의를 입은 남성이 앉아 노란 책을 보며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엔 하늘색 상의, 파란색 하의를 입은 여성이 바닥에 앉아 노란색 책을 들고 정면을 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성 오른쪽엔 흰색 사람 형상의 머리가 있는데, 머릿속 뇌엔 책이 그려져 있고, 책 위에 노란색 돋보기가 있다.

소장품이야기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

국립한글박물관에는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이 64권 소장되어 있습니다.
1973년 뉴욕한국학교 개교 이래 2017년까지 매년 전교생의 글을 싣고 교사와 학부모의 글을 보탠 문집으로,
뉴욕한국학교의 설립자 허병렬 선생님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한국학교 구성원들의 생생한 음성이 실려 있는 이 자료에는 50여 년 간 미주,
특히 뉴욕의 한인들이 한글과 한국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일궈온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이 여러권 나열돼 있다. ▲ 뉴욕한국학교 문집
사진 출처: 뉴욕한국학교 누리집(koreanschoolny.com)

기증자 허병렬 선생님은 1973년 뉴욕한국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으로 36년간 재임, 2018년 이사장직에서 퇴임하시기까지 70여 년을 한인 교육에 힘쓴 교육자입니다. 이 외에도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를 창립하는 데 앞장서서 총회장 및 총이사장을 역임, 기관지 「한인교육 연구」를 편집 발행하는 등 한인 교육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미주 ‘한국학교의 대모’입니다.

뉴욕한국학교 소식 창간호의 한 페이지 사진이다. ▲ 뉴욕한국학교 소식 창간호

1973년 발행된 창간호는 낱장 문서를 철침으로 고정한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한글 타이프라이터를 가져온 분을 찾아 타자를 부탁하고 몇 사람이 늘어서 묶어냈다고 합니다. 한글 타자기가 흔치 않던 미국에서 한글로 된 기관지를 만드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창간호에는 학부모 설문조사가 실려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학부모들이 자녀를 뉴욕한인학교에 보내게 된 주된 동인은 ‘한글’ 학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 한국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고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답: 1위 ‘한글을 조금씩 알게 된다.’2위 ’한국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하기 시작한다.’

문: 가장 강조했던 과목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1위 ‘한글’

문: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1위 ‘아이들과 만나 놀 수 있기 때문’2위 ‘한글을 배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기 때문’

뉴욕한국학교 제40호 개교 20주년 특집호 표지 사진이다. 옅은 갈색 책 표지엔 숫자 20이 그려져 있는데, 숫자 2는 연두색으로 크게, 그보다 작은 숫자 0은 그 안에 풀과 노란색 원이 그려져 있고, 노란색 원 안엔 뉴욕한국학교라고 적혀있다. ▲ 제40호 개교 20주년 특집호

1994년에 발행된 제40호는 개교 20주년 특집이었습니다. 한인사회 각계의 축하 인사와 더불어,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스무 돌 선물로 서울에서 보내신 ‘뉴욕한국학교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뉴욕한국학교 제40호 개교 20주년 특집호에 실린 뉴욕한국학교 노래 페이지 사진이다. ‘위로 위로 자꾸자꾸 올라가면은 우리들은 한 조상 한 조상의 아들 딸 뉴욕한국학교 배움의 동산 너도 나도 우리는 무궁화 겨레. 우리 말 한글 잘들 배워서 자랑스런 단군 자손 우리 한국 빛내자 뉴욕한국학교 정다운 글벗 너도 나도 우리는 무궁화 형제’라는 가사가 적혀있다. ▲ 뉴욕한국학교 노래

위로 위로 자꾸자꾸 올라가면은
우리들은 한 조상 한 조상의 아들 딸
뉴욕한국학교 배움의 동산
너도 나도 우리는 무궁화 겨레

우리 말 우리 한글 잘들 배워서
자랑스런 단군 자손 우리 한국 빛내자
뉴욕한국학교 정다운 글벗
너도 나도 우리는 무궁화 형제

문집에는 되도록 모든 학생의 글을 싣고자 하여, 아직 글씨를 못 쓰는 어린이들의 그림과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실려 있기도 합니다.

뉴욕한국학교 초등반 학생의 글이 적혀있는 페이지 사진이다. 페이지 왼쪽엔 ‘김 선생님께 우리가 편지 쓰는거 배워요. 선생님, 할 말이 없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라고 편지가 적혀있고, 오른쪽엔 편지 봉투 모양의 그림이 있다. ▲ 초등반 학생의 글

김 선생님께
우리가 편지 쓰는 거 배워요.
선생님, 할 말이 없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학생들의 글은 대부분 한국학교에서의 생활과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을 담은 솔직한 글도 실려 있습니다.

뉴욕한국학교 중등반 학생의 글이 적혀있는 페이지 사진이다. 페이지 상단엔 ‘한국학교가 싫은 이유’, ‘이보람’, ‘나는 한국학교를 아주 싫어해요. 왜냐하면 너무 일찍 일어나야 하고, 토요일 아침에 만화 영화를 못 보고, 친구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숙제가 너무 많고, 스낵이 너무 싫어요. 나는 베이글과 도넛츠를 너무 싫어해요.’라고 적혀 있으며, 아래에는 신발 한 켤레가 그려져 있다. ▲ 중등반 학생의 글

한국학교가 싫은 이유
 나는 한국학교를 아주 싫어해요. 왜냐하면 너무 일찍 일어나야 하고, 토요일 아침에 만화 영화를 못 보고, 친구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숙제가 너무 많고, 스낵이 너무 싫어요.
 나는 베이글과 도넛츠를 너무 싫어해요.

문집에는 자녀를 뉴욕한국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글도 실려 있습니다. 이민 생활 적응을 위해 영어 교육에 힘쓰다 보니 한국어교육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한국학교를 알게 되어 다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사연 등 이민 가정들의 여러 고민과 노력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2000년대에 발간된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 사진이다. 왼쪽엔 제50호, 오른쪽엔 제51호의 표지가 있다.

2000년대에 발간된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 사진이다. 왼쪽엔 제52호, 오른쪽엔 제53호의 표지가 있다.


2000년대에 발간된 뉴욕한국학교 문집 <글모음> 사진이다. 왼쪽엔 제55호, 오른쪽엔 제56호의 표지가 있다. ▲ 2000년대에 발간된 문집들

한 해 한 해 지나며 형태를 갖춰가는 문집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보기 좋은 문집을 펴내려는 한국학교 사람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타이프라이터로 낱장을 찍어내던 문집은 인쇄소에서 인쇄, 제본한 책자의 형태로 변화합니다. 매호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표지가 만들어지고, 특집호의 표지는 컬러로 특별하게 꾸며집니다. 본문에도 학생들의 그림과 사진, 삽화가 곁들여집니다.

나무 밑에서 흰색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곱게 딴 일제 강점기 시절 여성이 그려진 책 표지다. 여성 왼쪽에는 ‘학생’, ‘5월호’가 한자로 적혀있다. 책 표지는 전반적으로 낡아 끝이 헤져있다. 책 주변으로는 옛 교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모두 양팔을 위로 들어 만세를 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꽃과 구름이 떠다닌다. ▲ 제60호 특집

2013년에 나온 제60호 특집에는, 개교 4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서 이 문집이 ‘한국문화교육 실험현장 40년의 기록’이라는 허병렬 이사장의 인사말이 적혀 있습니다. 표지의 사진은 1998년 뉴욕에서 공연된 ‘심청, 뉴욕에 오다’ 연극 사진입니다. 뉴욕한국학교의 학생들은 한국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 ‘심청’, ‘나무꾼과 선녀’를 연극으로 꾸며 뉴욕 시내 극장에서 공연했다고 합니다. 특히 ‘심청, 뉴욕에 오다’ 연극은 개교 25주년 기념 공연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기증자 허병렬 선생님은 한국문화 교육 인생을 돌아보시며, 뉴욕한국학교 문집 전집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하신 일을 명예롭고 기쁜 일로 회고하셨습니다. 이 문집 모음은 해외 한글 확산과 한국어 보급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치 있는 기록물로서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작성자: 강연민(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