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가 너무나 쉽고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
모르는 한글 단어는 사전을 통해 손쉽게 뜻을 찾을 수 있죠.
만약 한글 문법이 체계화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큰 혼란이 야기될 텐데요.
우리가 지금처럼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말모이>와 『한글마춤법통일안』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말모이>
▲<말모이> 원고
작자: 주시경 등 / 시대: 1914년경 / 크기: 17.3 x 23.8cm
국립한글박물관의 <말모이> 원고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집필된 국어사전 원고입니다.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쓰인 이 원고는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국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작성했는데요.
1911년부터 시작된 사전 편찬 작업은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후 중단됐지만,
1929년 조선어학회의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편찬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난관
<말모이>가 편찬되는 과정에는 난관이 많았습니다.
편찬 작업이 한창이던 1914년 주시경이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며
불과 39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이후 김두봉이 나서 <말모이>의 바탕이 되는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수사망을 피해 상해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이 밖에도 제작에 참여했던 이규영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완성 단계였음에도 사전을 출간하지 못했습니다.
최초 국어사전 원고
▲단어 ‘걀죽’까지만 남아 있는 <말모이> 원고
고유어와 한자어, 외래어와 전문어 등을 포함한 <말모이> 원고는
언어 사전의 성격을 지니는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입니다.
또한, 어미와 조사를 포함한 토씨를 독립된 품사로 설정해
한국어 문법사에 큰 의미를 지닙니다.
아쉬운 점은 <말모이> 원고가 ‘ㄱ’부터 ‘걀죽’까지만 남아 있다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표기나 한국어 어휘 변천사를 이해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한글마춤법통일안』
▲『한글마춤법통일안』
작자: 조선어학회 / 시대: 1933년 / 크기: 20.0 x 13.5cm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을 통일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회의를 거쳐 만든 표기법안입니다.
1929년 10월 조선어 학회는 사전 편찬회를 조직하고
철자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의 제정에 착수했는데요.
그 후 1930년 10월부터 1933년 10월까지 걸쳐 완성된 것이
바로 이 『한글마춤법통일안』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루어낸
기념비적 표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3시간의 회의
『한글마춤법통일안』은
3년 동안 125회, 약 433시간이라는 긴 시간의 회의를 거쳐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총 37명(중복 포함)이 참여하여 원안 축조 토의·제1독회,
원안 수정 및 수정안 검토·제2독회, 수정안 정리 등을 거쳐 만들어졌는데요.
이 과정에는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등의 인물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한글마춤법통일안』은 총론 3항과 각론 7장 65항, 부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
『한글마춤법통일안』이 제정된 배경에는 1920년대 일제의 ‘문화 통치’가 있었는데요.
일제의 식민 정책이 ‘문화 통치’로 바뀌면서
『백조』, 『개벽』과 같은 각종 문예 잡지가 활발하게 출판됐고,
한글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때 개인 혹은 출판물에 따라 같은 단어가 각자 다르게 표기됐는데요.
의사소통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바로잡고자 『한글마춤법통일안』을 제작하게 됐죠.
현재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근대 한글 연구소>에서는
한글 학자 주시경을 기리기 위한 작품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주시경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한글이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는 것처럼
그 노력 또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