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17년이 되었지만,
다니엘 린데만은 여전히 한글과 한국어를 사랑한다.
방송에서도 종종 한글의 과학성에 대해 말해온 다니엘 린데만.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글은 어떤 모습일까?
린데만의 한글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독일 출신 방송인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다니엘 린데만입니다. 한글을 사용한 지 17년 정도 됐는데, 여전히 한글을 사랑하고 있어요.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릴 적 독일에서 태권도를 배웠을 때, 도복 뒤에 ‘태권도’라고 적혀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한글을 접하게 됐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신기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동양학과에 들어가게 돼서 한국어와 한글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요. 대학교 가기 전 여름 방학 때 한글과 한국어를 미리 접하고 싶어서 동네 한인 성당에 갔어요. 당시엔 한국어를 몰라서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그냥 맨 뒤에 앉아 사람들이 말하고, 성가를 부르는 것만 듣고 있었죠.
그런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독일말로 어떻게 오셨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 한국어를 미리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왔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분이 제게 한글을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일요일마다 성당 미사가 끝나고 오후에 그분께 한 시간씩 한글을 배웠어요. 그때 한글을 처음 공부하게 됐죠.
당시 저는 동네에 있는 튜브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튜브를 만드는 기계가 잠시 멈출 때마다 종이를 꺼내서 한글 연습을 했죠. 어느 날은 종이를 꺼내놓은 채 쉬는 시간에 밥을 먹으러 갔다 왔는데요. 상사가 그 종이 위에 ‘일하는 시간에 그림 그리지 말라’는 글을 적어두었어요. 그때 속으로 ‘이건 그림이 아니라 한글이야. 제대로 알고 혼내라’고 생각했죠. (웃음) 오히려 배우는 데 더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이후 대학교에 들어가서 쭉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2009년에 열린 제12회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어와 한글을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 혹은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글을 ‘이미지화’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이라서 단어를 이미지화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가 있었죠. 예를 들어 ‘의자’라는 새로운 단어를 배우면, 의자에 다가가 직접 만지면서 “네가 의자구나. 발음이 어렵네”라고 말해요. 약간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오감을 활용해 시각적인 정보를 만들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상냥하다’라는 단어를 배웠을 땐 어학당 선생님께서 예문으로 ‘백화점 직원이 상냥하다’라는 문장을 사용하셨거든요. 그때 수업이 끝나고 정말 백화점에 갔어요. 그리고 1층에 있는 안내대 직원에게 남성 옷 파는 층을 물어봤죠. 직원분이 굉장히 상냥하게 대답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상냥하시네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죠.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부를 하면서 외우려고 노력했어요.
또 혼잣말을 많이 했어요. 독일에 있을 땐 한국말 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 가는 길이나 집에서 계속 혼자 말하면서 문장을 만들고 연습했죠.
한글과 독일의 문자는 과거 인쇄 및 보급 과정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어와 한글을 공부했을 때 느꼈던 두 문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언어의 역사를 봤을 때 확실히 공통점이 있죠. 한국에는 세종대왕이 있다면 독일에는 마틴 루터가 있어요. 16세기 종교 개혁을 하면서 마틴 루터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독일어를 통일화하는 발판을 만들었고, 그림 형제도 각 지방의 이야기를 모아 동화책을 만들면서 독일어를 정리했죠. 이 두 가지가 독일어를 일반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어요.
한글과 독일 문자의 차이점도 분명히 있어요. 독일 문자는 옆으로 쭉 나열해서 쓰잖아요.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을 위에서 아래로 합쳐 만들죠. 그래서 한글을 보면 블록을 쌓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어떤 상황에서는 한글이 더 짧고 굵게 표현을 할 수 있고, 반대로 독일 문자가 더 효율적으로 표현할 때가 있어요. 상황마다 사용하기 편한 문자가 각각 있더라고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식당 예약’은 한글로 쓰는 게 훨씬 빨라요. 그래서 제가 할 일을 적어놓을 때, 보통 한글을 좀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글은 사람이 직접 만든 글이잖아요. 굉장히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것도 매력적이에요. 자음은 우리가 발음할 때의 혀 모양과 입 모양을 따라 만들었고, 모음은 하늘, 사람, 땅을 바탕으로 만들었죠. 이런 배경을 같이 공부하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영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세계 각국의 문자들과 달리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철학적이고 체계적, 과학적인 부분이 한글의 좋은 특징 같아요. 또 모음이 항상 어디서든지 쓰이는 그대로 발음되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모음 ‘ㅏ’는 늘 ‘아’로 발음되고 ‘ㅗ’는 늘 ‘오’로 발음되죠. 그런 부분이 굉장히 편한데, 다른 언어들은 꼭 그렇지 않을 때도 많거든요. 독일어만 해도 모음 앞 자음에 따라서 모음 발음이 살짝 달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반면 자음은 발음이 불규칙한 것이 있어 외우는 게 조금 골치 아프죠. 기역과 리을이 만났을 때라던지요. 공부할 때 외워야 하니 배울 때 조금 힘들죠.
지난 10월 국립국어원의 국외 한국어 교원(K-티처) 홍보대사로 임명됐습니다. 한국어와 한글이 세계로 더 뻗어나가려면 국내에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왜 세계로 뻗어 나가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물론 국력과 연결된 문제고, 더 많은 사람이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한글을 쓸 수 있다면 굉장히 좋겠죠.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로 뻗어나갔어도 인상이 좋지 않다면 이걸 사람들이 많이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나 싶은 거죠.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세계로 많이 나아간다기보다 한글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함께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련해서 많은 기관에서도 노력하고 있고 케이팝 등 한국 문화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한국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될 테니, 앞으로 훨씬 자연스럽게 더 알려질 것 같아요.
한글 및 한국어와 관련해 향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K-티처 프로그램에서 홍보대사를 맡게 됐으니 프로그램을 알리는 역할을 할 예정이고요. 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매력을 알리는 일도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제가 독일에 가면 지인이나 가족이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하면서 설명을 부탁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 굉장히 재미있어요. 가족 행사가 있으면 항상 종이 한 장 달라고 해서 간단히 한글을 알려줘요.
제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면 늘 사람들이 물어봐요. 글자도 많고 어려운데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그러면 저는 한글이 굉장히 체계적이라서 쉽고 빠르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하죠. 10분 안에 알려 줄 수 있다고 하면서 설명하면 매우 좋아해요. 커다란 활동이 아니더라도 외국인들에게 종이 한 장으로 한글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다니엘 린데만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글은 사람의 생각을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의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생각을 이미지화시키고 퍼지게 할 수 있는 너무나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다니엘 린데만 제공)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