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으로 모양만 내고 향락적으로 생활하는 여자를 그리기 ᄯᅢ문에
일설 ‘못된ᄭᅥᆯ’이라고도 함니다. 그런 사람이 남자면 「모던ᄲᅩ이」라고.
1929년, 『학생』 1권 2호, 84쪽
일제 강점기, 한 잡지에 신어 ‘모던걸(Modern Girl)’에 대한 설명이 실렸습니다.
‘향락적인 못된ᄭᅥᆯ’이라니! 당시 모던걸을 바라보던 차가운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는 위의 설명이 실린 잡지가 바로 당시의 남녀 중고등학생이 보는 잡지였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남녀 중고등학생의 잡지 『학생』
▲ 『학생』 1권 1호
▲ 『학생』 1권 2호
▲ 『학생』 1권 3호
▲ 『학생』 1권 4호
연번 | 권호 | 발행일 | 가격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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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제 1권 제1호 | 1929년 3월 1일 |
30전 | 창간호 |
2 | 제 1권 제2호 | 1929년 4월 1일 |
- | 4월호 |
3 | 제 1권 제3호 | 1929년 5월 1일 |
25전 | 5월호 |
4 | 제 1권 제4호 | 1929년 7월 1일 |
방학준비호 | |
5 | 제 1권 제5호 | 1929년 8월 1일 |
하기휴가호 | |
6 | 제 1권 제6호 | 1929년 7월 1일 |
9월호 *앞뒤 표지에 ‘제5권 제5호’라고 오기돼 있으며, 이와 관련해 다음 호인 제1권 제7호 ‘지상사교실’ 독자 항의와 편집실의 사과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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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제 1권 제7호 | 1929년 10월 15일 |
10월호 | |
8 | 제 1권 제8호 | 1929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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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제 2권 제1호 | 1929년 1월 1일 |
신년호 | |
10 | 제 2권 제2호 | 1930년 2월 1일 |
2월호 | |
11 | 제 2권 제3호 | 1930년 3월 1일 |
3월 | |
12 | 제 2권 제4호 | 1930년 4월 |
방학준비호 | |
13 | 제 2권 제5호 | 1930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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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제 2권 제6호 | 1930년 6월 15일 |
6월호 | |
15 | 제 2권 제7호 | 1930년 7월 15일 |
창사십주년기념 하휴특집호 | |
16 | 제 1권 제8호 | 1930년 9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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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제 2권 제9호 | 1930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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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제 2권 제10호 | 1930년 11월 10일 |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학생』은 1929~30년에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계몽과 결집을 위해 개벽사(편집인: 방정환 등)에서 발행한 잡지입니다. 개벽사는 일찍이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어린이』 잡지로는 만족하지 못할 만큼 성장해버린 새로운 독자층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학생』을 만든 것입니다.
『학생』은 1929년 3월부터 1930년 11월까지 약 2년 동안 총 18호가 발행되었으며, 다양한 교양지식(역사, 과학, 수학, 위생 등), 문학(소설, 희곡, 시 등), 훈화, 만화 등을 수록했습니다. 『학생』 편집진이 기획한 코너 중에는 학생들의 제보와 투고로 꾸며진 것도 많은데, 이중에서도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 유행한 ‘모던걸’ 바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화장품, 단발, 비단양말, 영화배우
<그림 1>
살결이 고와지고 몸맵씨가 나나 햇드니...
나도 이전 알앗서! 아이 엇저문 화장품이 그럿케
여러가질가 참! 앗차! 눈섭 그리는 먹을 이젓네...
단발은 하고 십허도 아버지 ᄭᅮ중에 못할ᄭᅥᆯ!
어서 구쓰를 차저야 비단양말을 신어보지!』
1권 2호, 55쪽
<그림 2>
방은 영화배우들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다십히
하엿다 『ᄲᅡ렌치노』 『라몬나봐로-』
『ᄭᅵᆯ버-드ㆍ로-란드』 등등...
1권 7호, 64쪽
<그림1>에 화장품점 앞을 지나는 여학생이 보입니다. 얼굴은 곱게 화장을 하고 양손 가득히 쇼핑한 물건이 들려 있군요. ‘화장품, 눈썹 그리는 먹, 단발, 구쓰(くつ, 구두), 비단 양말’ 등 살결이 곱고 맵시가 살아 있는 모던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2>는 한 여학생의 방인데 외국 남배우들의 사진이 벽에 잔뜩 붙어 있네요. 무성영화 사상 최고 히트작이었던 「벤허(Ben-Hur, 1925)」의 주인공 ‘라몬 나봐로-(Ramon Novarro)’, 이탈리아 전설의 미남 배우 ‘ᄲᅡ렌치노(Rudolph Valentino)’, 멕시코의 콧수염 신사 ‘ᄭᅵᆯ버-드·로-란드(Gilbert Roland)’ 등 1920년대 여학생 사이에서 유행했던 배우와 활동사진(영화)이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모던 페이지- 실크 레그스(Silk Legs)
여학생 여러분 양말인들 어듸 마음 놋코 빗을 고르겟슴닛가!
- 흑색: 아마 당신 나희는 수물다섯? 서른? 마흔?
- 육색(살색): 아조 벗고 단이시요 그럼 더 모던이지!
- 회색: 당신은 아마 실연하엿지? 안이면 장차 실연하지 비열정적이닛가!
- 녹색: 가로수가 적은 조선도시에선 당신들의 다리나 보아야 봄 온 줄 알겟소.
- 도색(복숭아색): 당신을 삼십분만 ᄶᅩᆺ차단이면 담배 피는 것을 발견하리다. 담배라도 해태표만!
- 줄친(망사): 다리에 그물을 그렷스니 걸니는 게 만흘테지!
- 적색: 여기 적색에는 경관보다 모ᄲᅩ들이 비상소집!
- 다색: 경제학을 배우신 모양. ᄯᅡᆫ은 여간 흙방울은 ᄯᅱ여도 안 보히겟지?
- 백색: 세상에 이런 반대색이 어듸 잇겟슴닛가 그의 마음빗과 대조해 본다면!
1권 2호, 90~91쪽
학생계에 유행하는 것들을 소개했던 「모던 페이지」라는 코너에는 위와 같은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림1>의 여학생이 신어보고 싶어 하던 비단양말에 관한 내용이군요. 검정색을 신으면 유행에 뒤처지는 것, 회색을 신으면 머지않아 실연할 것, 복숭아색을 신으면 담배를 피우는 것, 빨간색을 신으면 모던ᄲᅩ이들 꾀는 것 등 비단양말의 색깔에 따른 여학생의 특성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치스러운 외제 물건을 쓰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빈정거림을 숨기지 않습니다.
지상남녀토론대회 - 남학생이 더 사치하냐? 여학생이 더 사치하냐?
(남학생 조필환)
양말 이약이를 안이할 수 업슴니다. 여학생으로 4~5원ᄶᅣ리 비단양말을 신고 쟝한 듯이 단이는 것을 보앗슴니다. 목직(木織)양말은 발고락 놀리기에 거북하고 종아리가 텁텁하다는 것이 「씰크스타킹」 상용 여학생의 애용 조건이고 구매 이유란 말슴을 들엇슴니다. 그런데 비단 양말 신은 이들의 집은 대개가 다 쓰러져가는 오막사리 집이고 남의 집 겻방이란 사실이 더욱 눈물 겨웟슴니다.
(남학생 홍은표)
얼골로 보자. 남학생 얼골에는 비누 하나면 그만일 것이다만은 여학생 얼골을 보면 비누 하나만 가지고 쓴다고는 못 할 것이다- 그 웬 화장이 그리 만탄 말이냐? レートクリム、수백분、화장수, 미안수들을 만저도 못 본 남학생은 만을지언정 그것들을 써 보지 못한 여학생은 업슬 것이다.
(여학생 이봉희)
남자들은 셋만 모여 안ㅅ게 되면 의례히 요새 여자들은 너무 사치해서 못 쓰겟다고 자기들의 부모가 무슨 병환 난 것보담도 더 큰 걱정들을 하며 공연히 약한 여자들을 ᄶᅵᆺ고 ᄭᅡ블고 하야 유쾌한 소일거리를 삼는 모양이지마는 실제에 잇서서는 남자들이 훨신 더 사치한 것이 사실임니다. … 우리 여자는 한 십원 내외를 드려서 「세루」 치마를 한 벌 해 입게 되면 멧햇 멧햇 동안을 두고 두고 액겨서 입지마는 남자들은 한 벌에 근 백원씩이나 드는 양복을 춘하추동의 각 철을 ᄯᅡ라서 몃 벌씩 해 노코 이것저것 밧고아 입지 안슴니가?
(여학생 김선주)
여러분 남학생은 오히려 우리 여학생을 사치하니 타락을 하느니 하고 짓씹지만 여러분 자신들을 도라보시요 그 고석(古石) 갓흔 얼골에 분 안 바르는 학생이 멧 분이나 잇슴니가? 그럿케 학교에서 금하는데도 분이다 기름이다 하는 여러분에게 만일 학교에서 우리처럼 유두분면(油頭粉面)을 허락한다면 엇더하겟슴니가? 아마 별별 횟박아지 별별 기름박아지가 다 ᄯᅥ나올 것임니다.
1권 1호,50~55쪽
남학생들이 여학생의 4~5원짜리 비단양말과 10원짜리 세루(serge, 고급모직) 치마를 언급하자, 여학생들은 거의 100원이나 하는 양복을 철마다 바꾸어 입는 남학생들을 비판합니다. 또 여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레도크림(レートクリム), 수백분(水白粉), 화장수(化粧水), 미안수(美顔水)에 대한 공격에는 남학생 역시 얼굴에 분과 기름을 바르는 사람이 많다고 맞받는 등 양쪽의 줄다리기가 팽팽합니다. 1920년대 후반 화장품 회사들은 조선의 신여성과 여학생들의 이미지를 활용한 화장품 광고를 앞다퉈 내놓았고, 신문사 주최로 화장법에 대한 강연이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미적 수양’, ‘문화의 진전’이라는 구호를 걸고 화장품 구매를 독려했지만, 여전히 학생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던 듯합니다.
잡지 『학생』으로 보았을 때, ‘모던걸은 못된ᄭᅥᆯ’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모던’이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실제 여학생들 사이에서 신식 문물이 유행하고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이번 글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남학생 사이에서도 비단 와이샤쓰, 양복, 백구두를 사랑하는 ‘못된ᄲᅩ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것에 큰 호기심을 갖고 발 빠르게 유행을 좇고 싶은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겠지요.
작성자: 김미미(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