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4호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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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정장과 파란색 셔츠를 입은 나태주 시인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손을 모아 올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안경과 모자를 썼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왼쪽엔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인 「풀꽃」의 시구가 새겨진 흰색 상자 모양에 빨간 꽃들과 풀잎이 그려져 있다. 그 뒤엔 흰색 종이들이 쌓여 있으며, 그 위로는 「풀꽃」의 시구가 황토색 두루마기 형식의 종이에 담겨있다.

반갑습니다 “훈민정음 자체가
바로 시”
시인 나태주

한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담아낸 문학을 꼽으라면 단연 시가 빠질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순우리말 시어가 은은한 꽃향기처럼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풀꽃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우리말 사랑은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글 시구를 디자인화한 제품을 출시하고 한글 서체를 무료로 배포하는 등 한글문화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는 나태주 시인의 한글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시 쓰는 사람 나태주입니다. 공주에 살고 있고요, 초등학교 교사로 43년 동안 일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올해로 16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8년, 한국시인협회장으로 2년간 일했고, 현재는 공주에서 나태주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나태주 시인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손을 올리고 턱을 괸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안경과 모자를 썼으며 그의 뒤에는 많은 책이 꽂혀있는 책장이 보인다. (출처: 나태주 제공)



Q

선생님의 시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널리 애송되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나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실까요?

A

먼저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말해야겠군요. 오늘날 독자들은 간결하고 짧은 시를 선호합니다. 제 작품 중에는 「풀꽃」이라든가 「행복」이 그런 시입니다. 하지만 저는 「멀리서 빈다」라든지 「시」와 같은 조금 볼륨감 있는 작품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품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


Q

선생님께서는 순우리말로 된 시어를 주로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소재는 감정이고 도구는 언어인데 우리나라의 시인이 시를 쓸 때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말을 사용할까요. 우리말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말은 외국말의 찌꺼기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순우리말입니다.

남색 정장과 흰 셔츠를 입은 나태주 시인이 양 무릎에 팔을 올려 두 손을 모아 턱을 괴고 비스듬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안경과 모자를 쓴 나태주 시인은 환하게 웃고 있다. (출처: 나태주 제공)



시는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는 영혼의 흔적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인데,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할 때 더욱 깊고 맑은 영혼의 울림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순우리말 속에는 시인의 유년이 숨어 있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시를 두고 살필 때도 좋은 시, 명시, 독자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작품들은 순우리말로 지어진 시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Q

지난 2021년 한글날에는 한 의류 업체와 협업해 한글로 「풀꽃」의 내용을 적은 옷을 출시하셨 습니다. 또한 2020년에는 글씨체 ‘나태주체’를 선보이셨는데요. 해당 작업의 의미와 그 과정에서 느낀 소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놀랍다는 느낌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류 업체나 패션 업체들과 협업을 할 때는 신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시작품이나 문장이 상품이 되기도 하고 일반인의 삶과 동행하기도 하는구나’, 이런 마음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나태주체’는 그냥 시도만 해보는 것으로 알았는데 정작 글씨체를 받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보니, 제 어설픈 글씨체가 화면에 뚜벅뚜벅 찍혀 나오는 걸 보면서 놀란 건 사실입니다. 한 시인으로서의 영광스럽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의류 업체와 협업한 시 「풀꽃」의 내용이 담긴 흰색 옷을 입고 책을 보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안경과 모자를 썼으며 앞뒤로 분홍색 꽃과 풀잎이 있다. 가장 뒤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가 담긴 병풍이 있다.(출처: 널디 홈페이지)

글꼴 나태주체 사진. 원고지 모양의 배경에 ‘나태주체’라고 적혀있다. (출처: 한글문화연대 누리집)


Q

최근 선생님의 시를 대중들이 필사하며 한글 캘리그래피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매우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새롭게 출현해서 유행하고 있는 예술형식 가운데 하나가 캘리그래피인데, 제 시의 문장이 자주 활용된다는 것 역시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아마도 제 시의 문장이 순수한 우리말로 되어 있고 생활과 사소한 사물, 감정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시를 읽고 베끼는 동안 지친 마음에 위로와 기쁨, 축복을 선사하기에 선택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는 낭독할 때 두 번 읽게 되고, 낭독하면서 필사할 때 세 번 읽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낭독이 눈으로 읽고 귀로 들어 두 번 읽는 것이라면, 필사는 다시 한번 눈으로 읽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방법을 우리 독자들이 아셨다니 매우 반갑고 기쁩니다. 더구나 ‘코로나19’의 터널을 건너오면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독자들이 자구책으로 필사책을 구해서 시를 필사했을 것이고, 그러한 노력이 확대되어 캘리그래피에도 활용되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Q

현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외래어, 줄임말 등의 한글 파괴 현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셨던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겐 혼란과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언어란 살아서 움직이는 영혼의 흔적이자 작용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의도적으로 제재하거나 관여한다 해서 영향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언어는 대중의 욕구나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저는 그것을 한글 파괴가 아니라 한글 확대라고 보고 싶습니다. 언어는 새롭게 변하고 새롭게 자라고, 또 새롭게 꽃을 피우는 생명현상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숲에서 정면을 향해 내리막길로 걸어오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검은색 코트와 체크무늬 목도리, 안경과 모자를 썼다. (출처: 나태주 제공)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저는 젊은 시절엔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면서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5년만 바라보면서 살자고 생각합니다. 시간 변화의 폭을 그렇게 보는 것이지요. 앞으로 5년 동안 저는 제 삶의 흔적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나온 50권의 시집을 6천 페이지 정도의 전집으로 묶을 계획입니다. 물론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 계속해서 시를 쓸 것입니다. 시인의 본분은 모국어로 쉬지 않고 시를 쓰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애국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마디로 말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행운이며, 여섯 살부터 한글을 배워 책을 읽고, 열다섯 살부터 시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26세에 시인이 돼 80살 가까이 시와 더불어 살아온 날에 감사한 마음일 뿐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두 분으로 단군과 세종대왕을 꼽습니다.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은 전 인류를 위한 위대한 가르침이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시인들이 마음속으로 새겨 꼭 지켜야 할 지침이라 생각합니다. ‘백성을 가르치는(인도하는) 바른 소리’ 그것 자체가 시라고 생각하고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가 훈민정음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황토색 정장을 입고 파란색 목도리를 한 나태주 시인이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파란색 모자와 안경을 썼으며, 파란색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출처: 나태주 제공)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