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 지자체, 개인할 것 없이 수많은 한글 글꼴을 만들면서 글꼴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가독성만을 따지는 것을 넘어,
글꼴마다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글꼴들이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디지털 세상 속에서 한글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
나눔과 배려의 상징으로 거듭난 한글 글꼴의 이야기를 전한다.
대통령 연하장에 쓰인 ‘칠곡할매글꼴’
‘위 서체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 교실에서 글씨를 배우신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습니다’. 지난 1월 새해를 맞이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한 각계 원로, 주요 인사, 국가유공자 등에게 보낸 연하장 하단에 쓰인 글귀다. ‘칠곡 할매글꼴’은 칠곡군에 사는 할머니들의 손글씨로 만들어졌으며, 늦은 나이에 포기하지 않고 한글을 배워 글을 읽고 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새해 연하장 (출처: 칠곡군청)
칠곡할매글꼴은 지난 2020년 12월에 개발돼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할머니들은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칠곡군은 할머니들의 마음과 손글씨를 보존하기 위해 서체로 만들었다. 할머니들의 글씨 400개 중 김영분(77), 권안자(79), 이원순(86), 이종희(81), 추유을(89) 할머니의 글씨 5종이 선정됐고, 할머니들은 글꼴을 만들기 위해 4개월간 각각 2,000장에 이르는 종이에 손수 글씨를 써냈다.
▲ 칠곡할매글꼴로 제작된 현수막 (출처: 경상북도청)
입소문을 탄 칠곡할매글꼴은 대통령 연하장뿐만 아니라 곳곳에 쓰이고 있다. 경상북도는 설 연휴를 맞아 귀성객 환영 현수막을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했으며,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위치한 포항시에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입대 환영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또한 한컴, MS오피스 프로그램에도 정식 탑재됐으며, 국립한글박물관은 이 글꼴을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따뜻한 정이 담긴 여러 글꼴
칠곡할매글꼴 외에도 사연이 담긴 글꼴들이 있다. 지난 2021년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는 세계인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을 이룬 베트남 여성들이 직접 쓴 한글 손글씨로 ‘다문화가정사랑체’, ‘다문화가정함께체’를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희귀난치병으로 알려진 소뇌외축증 환자의 손글씨를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글꼴로 만들어 무료 배포한 바 있다.
▲ (왼)다문화가정사랑체, (오)다문화가정함께체 (출처 :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 홈페이지)
또한, 아동옹호 대표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윤디자인그룹과 협업해 가수 에릭남의 손글씨로 ‘윤초록우산어린이체’를, 배우 송일국의 세쌍둥이 아들로 화제가 된 대한·민국·만세의 손글씨로 ‘삼둥이체’를 만들었다. 재단은 이 글꼴들을 후원 모금 방식으로 배포한 뒤, 후원금을 사회 소외 계층 및 한글로 뜻을 나눌 수 있는 단체에 기부했다.
이제 한글 서체는 컴퓨터 속에서 한글을 표현하는 도구를 넘어 나눔과 배려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뒤늦게 한글을 배웠지만 따뜻하고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킨 칠곡 할머니들처럼 한글의 힘이 사회 곳곳에 퍼져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