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8호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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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립한글박물관 <화요 한글문화 강좌> 제2회차 강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정재환 책임연구원의 ‘벤또(X)?!→도시락(O)!! 해방과 함께한 우리말 독립운동’ 영상 장면이다.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이야기하고 있고, 왼쪽엔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아 일하고 있는 ‘조선어학회’ 옛날 사진이 있다.

한박 튜브 화요 한글문화 강좌 2회차 갈무리 벤또(X)?!→도시락(O)!!
해방과 함께한
우리말 독립운동

국립한글박물관 유튜브에는 기획전시, 화요 한글문화 강좌, 어린이 학습 영상 등
다양한 동영상들이 매달 새롭게 게재됩니다. ‘한박튜브’ 코너에서는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 영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6월호에서는 2023년 국립한글박물관 <화요 한글문화 강좌>
제2회차 강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정재환 책임연구원님의
‘벤또(X)?!→도시락(O)!! 해방과 함께한 우리말 독립운동’ 영상을 정리했습니다.


#01

낡은 『우리말 도로찾기』 책이 어두운 배경으로 있는 가운데, ‘벤또(X)?!→도시락(O)!! 해방과 함께한 우리말 독립운동’이라고 적혀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해방 후 조선어학회가 펼친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 전반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조선어학회란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일제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지킨 단체입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조선어 사전 제작을 목표로 삼았으며, 그에 앞서 민족어 3대 규범인
『한글 맞춤법 통일안』,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모음』을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초반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며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의
학회 회원들과 민족 지사들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습니다.

#02

오른쪽에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엔 낡은 『한글 첫 걸음』 표지 사진이 있고, 아래에 ‘『한글 첫 걸음』 1945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이라고 적혀있다.

시간이 흐르고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조선은 해방을 맞이합니다. 이때 수감되었던 회원도 풀려나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초등과 중등 국어
교과서 편찬, 국어 교원 양성을 위한 국어강습회 실시, 국어사전 편찬 완료 등을 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1945년 12월 6일 첫 번째 가로짜기 한글 교과서인 『한글 첫 걸음』이 세상에 나옵니다.
이는 학생 국어 교육의 기초 교재로 사용되는 한편, 해방 후 높은 문맹률(78%)을 낮추기 위해
성인 교육용 교재로도 활용되며 총 207만 부가 제작됐습니다.

#03

오른쪽에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체조 구령법과 용어’가 적혀있는데, 일본어 표현과 ‘차려, 쉬어, 바로, 모여, 해산’ 등이 적혀있다.

오늘 강연의 중요 주제인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은 우리말을 도로 찾아 되살리기 위한
민족어 회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30여 년간 일제 강점하에 놓여있었기에,
해방 이후에도 생활 곳곳에서 일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체육 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 이틀 후 체조 용어 우리말 제정위원회를 조직해서
‘체조 구령법과 용어’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여러 단체에서 일본어 순화 용어 사용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때 조선어학회는 해당 용어를 감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04

오른쪽에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엔 ‘국어 정화의 4가지 방침’, ‘1. 우리말이 있는데 일본 말을 쓰는 것은 일본 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쓴다’, ‘2. 우리말이 없는 것은 옛말에서 찾아 비슷한 것이 있으면 끌어다가 쓴다’, ‘3. 옛말에도 없는 것은 새말을 만들어 쓴다’, ‘4. 한자어는 일어식 한자어를 버리고 우리식 한자어를 쓴다’라고 적혀있다.

한편,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은 미군정 학무국에서도 ‘국어정화정책’ 추진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21개 학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일본어를 조선어로 대치했고,
국어 정화의 4가지 방침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용례로는 ‘우와기’를 양복저고리 등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1948년, 943개의 표제어를 실은 『우리말 도로 찾기』가 발행되었습니다.

#05

검은 배경 안 왼쪽엔 ‘우리는 당연히 우리식으로’라고 적혀있고, 오른쪽엔 최현배 선생의 증명사진이 있다.

반면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에 대한 우려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모든 단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 즉 ‘면적’을 ‘넓이’로, ‘권척’을 ‘대뿌자’ 등으로
변경하면 오히려 생소한 표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최현배 선생은 조선의 사정에 맞게 단어를 바꾸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주체성을 세우는 일이라
대처했습니다. 이후 조선어학회는 1949년 10월 9일 우리말 도로 찾기 범국민운동을 추진했습니다.
한글학회, 한글전용촉진회, 대학생들이 모두 모여 왜식 간판 일소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죠.
‘덴뿌라’는 ‘튀김’으로, ‘우동’은 ‘가락국수’로, ‘스시’는 ‘초밥’으로 변경하자는 식의 계몽 운동이었습니다.

#06

오른쪽에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엔 ‘일본어 외래용어’, ‘가라오케, 쓰나미, 오타쿠→덕후, 이지메→집단 따돌림’이라고 적혀있다.

해방 후 70년이 흐른 후,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은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화되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일제 잔재어가 존재합니다.
‘가득’을 뜻하는 ‘이빠이’, ‘얼굴’을 뜻하는 ‘가오’, ‘느낌’을 뜻하는 ‘간지’,
‘빼내기’를 뜻하는 ‘누끼’ 등은 여전히 우리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라오케’, ‘쓰나미’와 같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본어 외래 용어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07

정재환 책임연구원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적혀있다.

이번에는 조선어학회가 전개한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해방 당시 일제 청산이라는 민족적 공감에 힘입어 빠르게 우리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세대는 ‘일제 잔재어 사용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말다운 우리말 사용이라는 절도 있는 언어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화요 한글문화 강좌]
2회차_ 벤또(X)?!→도시락(O)!! 해방과 함께한 우리말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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