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8호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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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동호 수어 통역사가 양손을 들고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반갑습니다 “수어는 농인을
동반자로 맞이하는 첫걸음”
수어 통역사 김동호

‘농아인의 날’은 농아인 스스로 정체성을 회복해 자립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농아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조선농아협회가 설립된 1946년 6월의 ‘6’에 귀 형상의 숫자 ‘3’이 결합한 6월 3일을 농아인의 날로 지정했다.
2022년 기준 농인 인구는 42만여 명으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런 농인들을 위해 20년 동안 그들의 귀가 돼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반갑습니다’를 통해 김동호 수역 통역사를 만나본다.

* 농인 : 청각에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주로 수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 농아 :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부 브리핑과 KBS 뉴스를 통역하는 20년 차 수어 통역사 김동호입니다. 수어 통역에 대해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Q

수어를 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어릴 적 문틈 사이에서 본 농인의 ‘수어’를 보고 흠뻑 빠지게 됐습니다. 기쁨도 있지만, ‘수어의 한 동작’으로 억압받고 고난을 겪었던 농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걸 봤어요. 당시 저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고, 그로 인해 수어에 대한 흥미가 생기게 됐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동호 수어 통역사가 비스듬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오른손 검지를 피고 있으며 왼손엔 흰색 종이들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김동호 제공)

Q

수어 통역사를 직업으로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처음부터 수어 통역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수어를 배우고 농인 친구, 형, 누나들과 얘기하는 게 좋았는데요. 수어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통역사보다는 친구로, 같이 삶을 나누는 사람들로 여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통역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더 공부하며 전문적인 통역을 수행하게 됐어요.

Q

한국어 단어와 문장을 수어로 전달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A

수어 통역은 한국어와 수어 단어를 1:1로 변환하는 과정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배우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어 어순에 영어 단어를 하나씩 끼워 맞추는 식이 돼버립니다.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콩글리시’처럼요. 수어 통역은 한국어의 의미를 찾은 후에, 수어를 보는 농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변환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rice’를 통역할 때는 상황과 문맥에 따라 ‘쌀’ 또는 ‘밥’으로 구분하는 것처럼요. 또한 ‘자르다’라는 말은 수어로 통역할 때 어떤 도구인지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이 전부 달라집니다.

여기다 수어는 시각적이고도 공간적인 언어라, 위치를 지정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손으로 만들어 표현하기도 해요. 이에 더해 한국어 어감과 문화의 차이, 그리고 현재의 통역 상황까지 고려해서 설명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수어에 사용하는 지문자 자음 그림이다. 각각 ㄱ부터 ㅎ, ㄲ부터 ㅉ까지 설명이 그려져 있다.

수어에 사용하는 지문자 모음 그림이다. 각각 ㅏ부터 ㅟ까지 설명이 그려져 있다.


특별히, 생소한 단어 등이 나오거나 정보 전달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 듯이, 지문자를 활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수어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지역명이라든가, 고유명사, 이름 등을 표시할 수 있어요.

Q

속도가 빠른 소리나 음성을 수어로 재빨리 통역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요. 특별한 방법이나 연습법이 있나요?

A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안경을 쓴 김동호 통역사가 정면을 바라보고 수어로 ‘감사합니다’를 표현하고 있다. 왼손은 가슴 쪽에 옆으로 놓여있으며, 오른손은 왼손 위에 정면을 향해 놓여있다. 수어로 표현한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김동호 제공)

수어가 가진 특성 중에는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저는 통역할 때 사건이나 내용들을 이미지화하면서 표정의 강약도 같이 준비해요. 이렇게 하려면 내용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읽고 들으며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얼개를 만들고, 모르는 내용은 찾아서 얼개 속에 넣어 둡니다.

뉴스나 브리핑은 시간이 촉박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는 통역의 경우에는 관련 도서나 논문 등을 참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해요. 제가 이해하는 양이 많을수록 통역의 질 또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Q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 현장에서 국민을 위해 수어 통역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일화가 있나요?

A

처음에는 수어 통역사를 화면에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수어 통역을 하는 의미가 없었죠. 모든 국민이 코로나19 브리핑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때인데, 수어 통역이 없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래서 부랴부랴 요청해 브리핑 화면에 같이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안타까운 일화죠. 그때뿐만 아니라, 외부 행사를 가보면 수어 통역사의 위치에 따라 농인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Q

수어 통역엔 손동작뿐만 아니라 표정 전달도 굉장히 중요한데요. 마스크로 인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그 당시엔 너무 무서웠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쓴 채로 굉장히 조심하고 있었잖아요. 그런 가운데 마스크 없이 선다는 게 너무나 두려웠는데,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수어 통역사로서 수어답게 통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이 마스크 없이 통역하는 고충을 이해해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동호 수어 통역사가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뒤엔 노란색과 분홍색 바람개비가 있다. (사진 출처 : 김동호 제공)

Q

사람들이 농인들에게 더 관심을 두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외국인에게 관심을 가지려면 외국어를 배우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문화, 사고방식 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경험하게 되는데요. 마찬가지로, 농인들에게 관심을 가지려면 이들의 언어인 수어를 배우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어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농인들의 언어, 문화뿐만 아니라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농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죠. 수어를 배운다는 것은 농인을 같은 삶 속에서 살아가는 동반자로 맞이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수어만큼 매력적인 언어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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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