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을 맞이한 해입니다. 지난 6월호에서는 『어린이』 편집실 사람들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어린이』가 인기 잡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독자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잡지 『어린이』 속에 실린 ‘독자담화실’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의 목소리를 확인해 보세요.
“누구든지 할 말씀이 있으면 보내 주세요. 책에 내어 드립니다”
『어린이』 편집진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잡지사에 보내달라고 독자들에게 요청했어요. 어린이 독자들은 잡지를 본 후기, 궁금한 점 등을 엽서나 편지로 써서 잡지사로 보냈는데요, 편집진들은 독자 참여 공간인 ‘독자담화실’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이 보낸 글들을 싣고, 일부는 답변을 달아 주기도 했어요.
“『어린이』 잡지에 대하여 잘잘못도 말씀하시고, 잡지에 글 쓴 사람에게 할 말씀이 있거나 누구에게든지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엽서에든지 봉투에든지 적어 넣어 보내주십시오. 누구의 편지든지 모두 책에 내어드리겠습니다.”
『어린이』 창간호, 「담화실: 누구 편지든지 내 드립니다」
독자 인증 및 후기
처음에 어린이들은 본인이 『어린이』 독자가 되었음을 인증하는 글이나, 『어린이』를 접한 소감이나 후기 등을 적어 보냈어요. 당시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 잡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만든 『어린이』 잡지를 보고 ‘우리들의 잡지’라며 크게 감격했어요. 외국에서 외롭게 지내는 독자들에게는 『어린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해요.
“저는 5호부터야 처음 독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흥취와 재미가 있고 유익한 잡지가 있는 것을 늦게야 알았는가 하고 많이 한탄하였습니다. (철원 읍내 이수창)” 『어린이』 제1권 제7호, 「담화실」
“일본 대판에 와서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직 위로되는 것이라고는 부모님 소식 듣기와 『어린이』를 읽는 것뿐이니 (대판야리 박영래)” 『어린이』 제3권 제6호, 「독자담화실」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느낍니다. "과연 이것은 우리의 잡지다! 끝끝내 우리를 위하여 정성을 써주는 잡지요 조선 소년의 참된 생명을 길러주는 잡지다!"고요. (장단 한규호)”
『어린이』 제5권 제3호, 「작문」 ‘『어린이』를 읽을 때의 느낌’
▲ 『어린이』 제3권 제6호, 「독자담화실」
“깔깔박사가 대체 어느 선생님이십니까?”
어린이들은 잡지를 보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거나 편집진들에게 바라는 사항을 써서 보냈어요. ‘몽중인’, ‘몽견초’, ‘깔깔박사’ 등 방정환 선생님의 다양한 필명을 두고 궁금해하거나 누구인지 추정하여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글은 단골 질문 중 하나였어요. 담화실지기나 편집진들은 바로 답을 해 주지 않고,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하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어요.
독자들은 방정환 선생님이 담배를 많이 피시는 것을 걱정해 담배를 끊기를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다음 호에 방 선생님께서 담배를 끊기로 했다는 ‘담화실지기’의 답변이 달면서 방정환 선생님의 금연 성공 소식을 전했어요.
“굉장한 신년호 「호랑이 형님 설떡 술떡」도 재미있었거니와 「셈 치르기」에는 아주 혼이 났습니다. 우습기가 재미있기로 세계 제일일 것입니다. 허리가 끊어질 뻔하여 두 번이나 쉬어 가면서 읽었습니다. 그것을 쓰신 깔깔박사가 대체 어느 선생님이십니까. 제발 좀 알려 주십시오.(안주 이인호 외 다수)”
(답변)
“참말 굉장히 깔깔박사를 알려 내라고 조르십니다그려. 깔깔박사가 누구인지 그것은 비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도 많이 떼를 지어 물으시니 조금만 알려 드리지요. 깔깔박사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점잖은 선생님 OOO 씨입니다. 짐작하시겠습니까? (지기)”
『어린이』 제4권 제2호, 「독자담화실」
“우리 동네에도 작은 깔깔박사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작은돌이입니다. 우스운 말을 어떻게 잘하는지 허리가 끊어집니다. 자아 우리 동네의 깔깔박사의 본명을 알려 드렸으니 누구든지 어서 어린이사의 깔깔박사의 본명을 알려 주십시오. (성진 변갑손)”
(답변) “그런 꾀를 쓰면 알려 줄 줄 알고. 그렇지만 안 되지 안 돼요. (깔깔박사)”
『어린이』 제4권 제6호, 「독자담화실」
어린이들은 잡지 내용 외에도 신변 문제 등과 같은 잡다한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신의주에 사는 한 독자가 서울에 가면 취직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다른 독자는 눈병으로 고생 중인데 고칠 방법을 묻기도 했죠.
“저는 부모도 없고 동생도 없는 불쌍한 소년입니다. 암만해도 이곳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운데 경성 지방으로 가서 취직을 하였으면 합니다. 여러 선생님의 주선으로 취직할 수가 있을까요? 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신의주 백승현)
(답변) 취직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아마 그곳보다 더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어린이』 제11권 제2호, 「독자담화실」
『어린이』 제8권 제10호, 「독자사진첩」 백승현(신의주, 16세)
“물난리에 다들 별일 없으신가요?”
『어린이』는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약 10만 명의 독자를 확보했는데요, 당시 어린이 독자들은 ‘독자담화실’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제안하면서 어린이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갔어요. 개성에 대홍수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사는 동무들이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올해 여름에 백두산에 갈 사람은 같이 모여서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본인이 사고 싶은 중고 책을 팔 사람이 있는지 묻는 등 지금의 중고 시장의 역할도 담당했어요.
“이번 개성에 물이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이 상하였다는데 개성에 계신 우리 어린이 애독자 동무 여러분 안녕히 계신지 궁금합니다. 독자담화실에 소식을 들려주시기 바라고 있습니다. (부산 영주동 김수득, 진주 읍내 최용석, 곡산 읍내 황해생)”
『어린이』 제2권 제9호, 「독자담화실」
“우리 십만 애독자 중에 혹시 『어린이』 창간호부터 대정 14년(1925년) 10월호까지(통권 제1호부터 제33호까지) 파실 분이 있으면 나에게 곧 통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곧 사겠습니다. (전주군 전주면 박만년)”
「어린이세상」 제27호, ‘독자담화실’
당시 어린이들이 서로 소통할 창구가 거의 없던 시절에, 잡지 속 ‘독자담화실’은 지금의 누리소통망(SNS)과 비슷한 역할을 했어요. 100년 전 어린이들이 쓴 글이지만 지금 우리가 봐도 공감되는 글들도 많답니다.
이번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잡지 『어린이』에는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요.
국립한글박물관 3층에서 전시하고 있는 기획특별전 <어린이 나라> 전시장에 직접 오셔서 확인해 보세요.
작성자: 김민지(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