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0호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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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색 배경 안에 무궁화가 곳곳이 그려져 있고, 태극기가 크게 그려져 있다. 태극기 앞엔 학사모를 쓴 여성이 무궁화를 들고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성 왼쪽엔 교복을 입은 여성과 남성이 태극기를 들고 있고, 오른쪽엔 남성 두 명이 각각 태극기를 들거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있다.

소장품 이야기 머나먼 타국에서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레슬리 송
(Leslie Rose Song)
기증 자료

무더운 여름의 절정인 8월은 조국 독립의 기쁨을 되새기는 광복절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을 맞이해 미주 지역 한인 이민자 가족의 애국심과 조국 독립 염원이 담긴 소장 자료를 소개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는 초기 하와이 이민자 가족의 삶과 미주 지역 독립운동 상황을 보여주는 한글 자료 110건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903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김장연(金長淵, 1881~1943)이 남긴 것으로, 김장연의 외손녀 레슬리 송(Leslie Rose Song)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입니다. 주로 김장연이 국내의 가족과 친지로부터 받은 한글 편지, 독립운동 관련 자료, 일상생활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미주 지역 초기 한인 이민자의 삶을 증언해 주는 자료로 의미가 깊습니다.

1903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김장연의 가족사진. 김장연은 장남 김영걸을 안고 의자에 앉아있고, 오른쪽엔 그의 아내 최심성이 꽃 모양으로 꾸며진 큰 모자를 쓰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 김장연과 아내 최심성, 장남 김영걸(1908)

하와이 이민국에 남아있는 자료에 따르면 김장연은 19세 때인 1903년 12월, 원산에서 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여러 일을 하며 생활하다가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63세로 별세하였습니다.

한인들이 미주 지역에 공식적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대한제국 정부가 추진한 근대적 이민 사업이었습니다. 1902년 100여 명의 한인 계약 노동자들이 첫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로 떠났으며, 1905년까지 총 56회에 걸쳐 7,000명 이상의 한인이 하와이에 이민하였습니다.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고국에 봉급을 송금하였습니다. 김장연이 가족에게 받은 한글 편지에서도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김장연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먼 타국에서 돈을 부쳐 주는 아들의 효심을 칭찬하고,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기를 바란다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김장연의 어머니가 아들 김장연에게 보낸 편지(1915년 추정) 사진. ▲ 어머니가 아들 김장연에게 보낸 편지(1915년 추정)
편지 말미에 적힌 ‘모셔’로 어머니가 쓴 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와이로 이민 간 한인들은 현지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며 미국 본토로 이동해 일하거나 사업을 경영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 이후에는 한인 유학생이 늘어나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한인 사회가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립 의연금, 애국금 등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습니다.

김장연의 가족들도 3·1운동 당시 독립 의연금을 냈습니다. 기증 자료 중에는 독립 의연금 영수증이 5점 있는데, 가족 각각의 이름으로 총 100달러라는 거액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탰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재미 한인단체 신문인 『신한민보』 1919년 8월 30일 자에 김장연의 가족 모두가 한인 동포의 모범이 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 사진. 영수증 상단엔 일본 장교들이 한 여성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 사진. 영수증 상단엔 일본 장교들이 한 여성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 사진. 영수증 상단엔 일본 장교들이 한 여성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 사진. 영수증 상단엔 일본 장교들이 한 여성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 사진. 영수증 상단엔 일본 장교들이 한 여성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 김장연 가족의 독립 의연금 영수증(1919)

김장연 인구세 영수증 사진. ▲ 김장연 인구세 영수증(1924)

김장연이 대한인국민회에 인구세를 낸 영수증도 남아 있습니다. 대한인국민회는 당시 미주 최대의 한인 단체로, 동포들에게 인구세를 거두어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습니다. 독립 의연금 영수증과 인구세 영수증을 통해 만리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김장연 가족의 애국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증자 레슬리 송의 어머니는 김장연의 둘째 딸 플로렌스 에바 김(Florence Eva Kim)이며, 아버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아시아계 주 의원이자 법률가인 알프레드 송(Alfred Song, 송호연, 1919~2004)입니다. 알프레드 송의 아버지인 레슬리 송의 할아버지 역시 1904년 11세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가는 배를 탔던 이민자였습니다.

기증자 레슬리 송은 미국 초기 이민자의 후손으로 집안 대대로 소중히 보관되었던 귀중한 자료를 기증하였습니다. 이 자료를 통해 미국으로 떠난 한인들이 고단한 이민 생활을 어떻게 꾸려갔는지, 독립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도왔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레슬리 송의 기증 자료는 2018년에 발간된 기증자료집 『고국으로 돌아온 한글 편지』에 상세히 소개되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한글 편지』는 디지털한글박물관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한글박물관 누리집에 방문하셔서, 김장연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윤지현(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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