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소재로 한 미술 작품을 생각하면 붓글씨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의미를 부여해 그 자체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 작가가 있다.
금보성 작가는 ‘한글 회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고 있다.
‘반갑습니다’를 통해 금보성 작가를 만나본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한글 화가 금보성입니다. 현재 금보성아트센터 관장과 백석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얼마 전까지 서대문문화원 원장을 지냈습니다. 75회 개인전과 여러 그룹 단체전을 열었으며,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해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전시도 지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활동하시다가 미술 작가로 전향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 때 그림을 그리고 시를 발표한 것을 지켜본 교수님이 목회보다 문화선교사로 활동하도록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후 15년 동안 해외에서 활동했는데요. 선후배 선교사와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작가 작업실을 자주 방문하게 됐고 그러면서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실 때 한글을 주요 소재로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글 작업의 소명 같은 것이 제 안에 뿌리내린 계기가 있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위대한 한글의 ‘소멸성’입니다. 한류 열풍으로 인해 ‘외국 대학에 한국어학과 개설이 늘었고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이유는 바로 인구 감소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소세에 접어들 것이며,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 국가의 존재 여부조차 위험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설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받은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시를 쓰던 제가 시보다 그림으로 남겨야 할 문화유산은 글로 된 그림, 책 속에 묻혀 버린 문자가 아닌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한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를 기록할 수 있는 그림을 풍경이 아닌 글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39년이 지난 지금도 그 체온을 유지하며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한글 회화’란 무엇인가요?
시를 쓰다 보니 문자를 해체한 작품들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한글도 해체하면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곧바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 시절엔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용기로 시작한 그림이라 작품성을 갖췄다기보다는 무지에 가까웠죠. 또한 당시 한글 작품은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한글은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 인식이 강했고, 한글로 작업한다고 하면 붓글씨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한글 회화’라는 장르를 만들었으며, 해외에서 전시를 열 때마다 이를 ‘한국인의 정신이 담겨 있는 회화’라고 소개했습니다.
한글 회화는 캔버스에 물감을 올린다고 회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화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바로 놀이, 해학, 신명, 배색입니다. 일반적 회화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내면의 이야기를 활용해 작가가 자유롭게 작업해도 어느 정도 회화로서 작품성이 인정됩니다. 하지만 한글 회화의 경우 놀이, 해학, 신명, 배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작업하면 한글 자음과 모음을 활용했더라도 정체성이 부재하며, 해외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었을 때 초라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한글 관련된 작품은 일반 작품보다 더 까다롭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심미안적 혜안’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한글 문자 展 - 신 훈민정음 해독> 전시에서 어린아이들의 놀이었던 종이 찢기 방법으로 작품을 구성하셨습니다.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한글을 윷놀이처럼 공중에 투척하여 회전한 이미지를 상상으로 정지시킨 다음 캔버스에 올린 ‘윷놀이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해외 관객들의 해체된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의 뜻과 의미에 대해 질문할 때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에서 풀지 못한, 소화되지 않은 채로 살았습니다. ‘산’이라는 단어와 의미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ㅅ’, ‘ㅏ’, ‘ㄴ’의 개별적 의미에 대해 알고 있진 못합니다. ‘분명 의미가 있지만 기록되지 않았거나 지나쳐 버렸다’라고 저를 다독이며 위로했습니다.
어느 날 어린아이들의 색종이 찢기 놀이를 보고 실험적 작품을 발표하게 됐는데, 이 ‘문자의 속내’를 통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ㄱ’은 기준, 공의, 공평의 의미. ‘ㅅ’은 소리, 소금의 의미. 좋은 자연의 소리,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첨부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종이 찢기에서 찢는다는 것은 가슴을 열거나 답답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문자 스스로 속내를 보여주거나 들켜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음과 모음에 담겨 있는 속내는 속풀이와 같습니다. 한글 문자의 자음과 모음이 만나서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독립된 모습으로도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의미를 부여해서 한글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도록 하는 일에 힘쓰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한글과 관련된 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한글재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개인이 진행하는 것은 한계성이 있기에 조금 더 확장해 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글은 제게 종교와 같은, 소명 같은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척추인 한글은 우리의 정신이며 인문학의 보고인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글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입니다. 한글이 문자나 소통의 제한적 기능이 아닌, 더욱더 다양하게 활용되고,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사진 출처 : 금보성 작가)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