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3호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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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 현장 사진이다. 정면 화면엔 옛 복장을 한 사람들의 그림이 띄워져 있고, 그 아래엔 전통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앞쪽 전시장엔 고서들이 전시돼 있다.

소장품 이야기 기획특별전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 이야기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장에서는 조선 후기의 ‘한양’ 사람들이
어떻게 여가를 즐기고 풍성한 문화생활을 누렸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한산거사의 『한양가』와 동시대 혹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향유되었던,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고전문학 작품 등을 함께 보며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 한글문화유산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풍요롭고 구경거리 넘쳐나니, 사람들은 태평성대 노래하네

“하늘이 내신 왕도 해동(海東)의 으뜸이라
국호는 조선이요, 도읍은 한양이로다
단군의 구속(舊俗)이요,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라
의관도 화려하고 문물도 거룩하다”


“오만사년(五萬斯年) 누릴 도읍 한양성중 거룩하다
산천, 누대, 성곽, 지당(池塘) 윗글에 하였으니
다시 할 말 아니로되 예의동방 장할씨고
고려에 태어나고 싶단 말은 중원(中原) 사람 말이로세”

- 한산거사, 『한양가』

『한양가』는 1844년에 한산거사가 풍요롭고 번화한 조선의 수도 한양에 대해 지은 노래입니다. 『한양가』에서 소개한 한양은 하늘이 내신 왕도로, 의관도 화려하고 문물도 거룩합니다. 또한 당시 중국 사람들이 ‘한양’을 수도로 삼고 있는 한국을 부러워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 가객 김천택(金天澤)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1728)(보물)에서도 ‘삼각산(남산)’과 ‘한강’으로 대표되는 곳, 한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시가 여러 편 전합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 가객 김천택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가집 『청구영언』의 「만횡청류」 539번과 544번의 사진이다. 낡은 종이에 한글과 한자가 섞여서 쓰여있다. ▲ 「만횡청류」 539번, 544번

“남산의 아름다운 기상은 울울창창
한강의 흐르는 물은 넘실넘실
주상전하는 이 산수같이 산이 무너지고
물이 마를 때까지 만수무강
하시어 천천만만세를 태평을 누리시거든
우리는 백성이 되어 태평성대에 격양가를 부르리”

— 「만횡청류蔓橫淸類」 539번, 『청구영언』

“봄바람에 지팡이 짚고 남산에 올라
한양 윤곽을 또렷이 둘러보니
인왕산 삼각산은 범과 용이 북극을 떠받쳤고
남산 한강은 금띠로 잇대어
오래갈 모습이 천만년이 지나도 끝이 없구나
임금은 덕을 닦고 신하는 정사를 돌보니
예의 있는 동쪽 나라가 요임금 시절이요
순임금 세상이로다”

— 「만횡청류」 544번, 『청구영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문화가 있는 삶: 악기 연주와 노래에 춤을 더해 흥을 돋구네

“금객(琴客) 가객(歌客) 모였구나 거문고 임종철이
노래에 양사길이 계면(界面)에 공득이며
오동복판(梧桐腹板) 거문고는 줄 골라 세워 놓고
치장(治粧) 차린 새 양금(洋琴)은 떠난 나비 앉혔구나”

“화려한 거문고는 안족(雁足)을 옮겨 놓고
문무현(文武絃) 다스리니 농현(弄絃) 소리 더욱 좋다
한만(閑漫)한 저 다스름 길고 길고 구슬프다
피리는 침을 뱉고 해금(奚琴)은 송진(松津) 긁고
장구는 굴레 죄어 ‘더덕’을 크게 치니
관현(管絃)의 좋은 소리 심신(心身)이 황홀하다”

“춤추는 기생들은 머리에 수건 매고
윗영산(靈山) 늦은 춤에 중영산(中靈山) 춤을 몰아
잔영산(靈山) 입(立)춤 추니 무산선녀(巫山仙女) 내려온다
배따라기 북춤이며 대무(對舞) 남무(男舞) 다 춘 후에
(…) 상모(象毛) 단 노는 칼을
두 손에 비껴 쥐고 잔영산(靈山) 모는 새면
항장(項將)의 춤일런가 가슴이 서늘하다
보기에 번화하고 듣기에 신기하다”

- 한산거사, 『한양가』

조선 후기 한양의 명승지에서는 각색 놀음이 벌어졌습니다. 놀음을 벌이는 사람도 다양하고 그 내용도 다채로운데, 온갖 놀음 중에서도 특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것은 임금님을 모시는 별감들의 승전(承傳)놀음입니다.

승전놀음을 총감독한 별감은 예술적 안목이 뛰어난 한양 최고의 멋쟁이로, 당대 유흥문화를 주도했습니다. 승전놀음은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고 『한양가』에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별감과 기생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이름난 악사들의 연주와 기생들의 노래, 검무 등이 실감나게 펼쳐집니다.

승전놀음에 초대된 악사들은 당대 최고의 전문가였습니다. 이들은 연주에 앞서 거문고며 생황, 퉁소, 죽장고(竹杖鼓), 피리, 해금, 장구, 양금(洋琴) 등을 조율했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관현의 좋은 소리에 심신이 황홀해집니다. 이어서 소리하는 기생이 「춘면곡春眠曲」, 「매화타령梅花打令」 등을 부르고, 춤추는 기생은 배따라기, 북춤, 대무(對舞), 남무(男舞)를 다 춘 뒤에 검무(劍舞)까지 선보입니다.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육률악기> 사진이다. 갓을 쓴 남자 6명이 둘러앉아 제각기 악기를 다루고 있다. ▲ 김준근, 〈육률악기〉, 《기산풍속도첩》
19세기 이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김준근의 <기생 검무 추고> 사진이다. 기생 2명이 검무를 추고 있다. ▲ 김준근, 〈기생 검무 추고〉
19세기 이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한양가』의 승전놀음 장면은 당시 한양 사람들의 문화가 있는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조선 후기 한양 곳곳의 명승지에서는 각색 놀음이 벌어졌고 그런 곳에서는 음악과 노래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벌어진 놀음에서 흥겨운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구경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 것입니다.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에서도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며 풍류를 즐기는 내용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청구영언』의 「만횡청류」 525번과 신흠의 시조 145번 사진이다. 낡은 종이에 한글과 한자가 섞여서 쓰여있다. ▲ 「만횡청류」 525번 /
신흠의 시조 145번

“손약정(孫約正)*은 점심 차리고
이풍헌(李風憲)*은 술과 안주 장만하소
거문고, 가야금, 해금, 비파, 저, 피리, 장구,
악공은 우당장(禹堂掌)*이 데려오게
글 짓고 노래 부르기와 기녀들 돌보는 건
내 다 담당하리라”

— 「만횡청류蔓橫淸類」 525번, 『청구영언』

“보허자(步虛子)* 마친 후에
여민락(與民樂)*을 이어 하니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에
듣는 흥이 더하였도다
아이야, 상성(商聲)을 마라
해 저물까 하노라”

— 신흠(申欽)의 시조 145번, 『청구영언』

*손약정(孫約正): 손씨 성의 약정. 약정은 조선 시대 향약 단체의 임원
*이풍헌(李風憲): 이씨 성의 풍헌. 풍헌은 고을 유향소에서 면, 리의 일을 맡아보던 사람.
*우당장(禹堂掌): 우씨 성의 당장. 당장은 고을 모임의 우두머리

*보허자(步虛子): 고려 때 들어온 당악(唐樂). 조선 시대에 궁중음악과 민간 풍류 기악곡으로 발전해 간 음악.
*여민락(與民樂): 세종 때 만들어진 음악으로, 조선 후기로 가면서 궁중음악과 민간의 순수 기악곡으로 발전함
*우조(羽調): 통일신라 이후 거문고 악곡에서 사용되는 악조
*계면조(界面調): 전통음악에서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악조

문화가 있는 삶: 『한양가』의 승전놀음에서 소리하는 기생이 부른 노래

“거상조(擧床調) 내린 후에 소리하는 어린 기생
한 손으로 머리 받고 아미(蛾眉)를 반쯤 숙여
우조(羽調)라 계면(界面)이며 소용이(騷聳耳)* 편락(編樂)*이며
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며 어부사(漁父詞) 상사별곡(相思別曲)
황계타령(黃鷄打令) 매화타령(梅花打令) 잡가(雜歌) 시조(時調) 듣기 좋다”

- 한산거사, 『한양가』

*거상조(擧床調): 연회를 시작할 때 먼저 연주하는 음률
*소용이(騷聳耳):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남창가곡에 속하는 노래로, <삼수대엽(三數大葉)>의 가락을 덜어내고 속도를 빨리 하여 높이 질러 부르는 곡
*편락(編樂):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남창가곡에 속하는 노래로, 앞부분은 우조(羽調)로, 뒷부분은 계면조(界面調)로 긴 노랫말을 촘촘히 엮어 부르는 곡

조선 후기의 한양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즐겨 듣고 또 불렀을까요? 『한양가』의 승전놀음에서 소리하는 기생은 「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 「어부사漁父詞」, 「상사별곡相思別曲」, 「황계타령黃鷄打令」, 「매화타령梅花打令」 등을 불렀습니다. 이 노래들은 조선 후기에 연주와 함께 불린 12가사 중 하나로,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를 비롯한 시가집 등에 그 노랫말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 가객 박효관(朴孝寬, 1803-?)과 그의 제자 안민영(安玟英, 1816-1885)이 편찬한 가집 『가곡원류歌曲源流』에는 「상사별곡」이 실려 있습니다. 「상사별곡」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의 슬픔과 그리움을 노래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 가객 박효관과 그의 제자 안민영이 편찬한 가집 『가곡원류』의 「상사별곡」 사진이다. 낡은 책에 한글로 가사가 적혀있다. ▲ 「상사별곡」, 『가곡원류』국립한글박물관

“이별로 인한 온갖 일 중에 그리워만 하고
보지는 못하는 이내 진정을 그 누가 알랴.
맺힌 시름 홀로 빈방을 지키는 게 가장 서럽다.
그리워만 하고 보지는 못하는 이내 진정을 그 누가 알랴.
맺힌 시름 이만저만이라.
흐트러진 근심 다 팽개쳐 던져두고
자나 깨나 깨나 자나 임을 못 보니 가슴이 답답
아리따운 모습 고운 목소리 눈에 생생하고 귀에 쟁쟁”

당시 사람들이 귀로 듣고 입으로도 부르며 즐겼을 위의 가사들은, 고전문학 작품의 인물들도 노래로 불렀습니다. 고전 소설 『이춘풍전』에서는 서울 왈짜 이춘풍이 평양 기생 추월에게 버림받고 사환 노릇을 하며 「매화타령」을 불렀고, 『남원고사』에서는 춘향이의 왈짜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춘면곡」과 「어부사」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남훈태평가』의 「춘면곡」 사진이다. 낡은 책에 한글로 가사가 적혀있다.▲ 「춘면곡」, 『남훈태평가』, 국립한글박물관

“봄날 졸음 느긋이 깨어 대살창문 반쯤 여니
뜰에 핀 꽃이 화려한데 가는 나비 머무는 듯
강 언덕엔 버들이 무성하여 안개가 드문드문 뵈는구나
창문 앞 덜 익은 술을 두세 잔 먹은 후에
호탕하여 미친 흥을 끊임없이 자아내어
백마 타고 금빛 채찍 들고 기생집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스미고 (…)”

*「춘면곡」: 화창한 봄날을 배경으로 남녀의 만남과 이별,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

고전 소설 『이춘풍전』의 「매화타령」 사진이다. 낡은 책에 한글로 가사가 적혀있다.▲ 「매화타령」, 『이춘풍전』, 국립한글박물관

“그런 정 저런 정 다 버리고 전에 하던 가사나 하여
보세.” 춘풍이 매화타령을 한다.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피엄즉도 하다마는 백설이 분분하니
필지 말지, 어화 세상사 가소롭다.”

이때 추월의 방에 놀던 한량들이 노래를 듣고 의심하니
추월이 무색하여 하는 말이 “내 집에 사환하는 놈이,
서울 이춘풍이라 하는 놈이 소리를 하니 신청치
마소서.”

한량들이 이 말 듣고 하는 말이, “서울 산다 하니
불쌍하다.” 하고 술 한 잔 가득 부어 주니 춘풍이
갈지우갈하여 받아먹으니 가련하더라.

*『이춘풍전』: 조선 후기 한양 사는 이춘풍을 주인공으로 한 한글 소설이다. 당시의 한양 시정 풍속을 잘 담아냈으며, 상품 경제가 발달해 물질 중심적 가치관이 자리 잡았던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이춘풍은 나랏돈(호조)을 빌려 장사를 시작하는 허랑방탕한 인물로, 평양 기생 추월의 꼬임에 넘어가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춘면곡」 들어보기

「매화타령」 들어보기

경치 좋은 명승지에 정겨운 벗들을 불러 풍류를 즐겼던 당시의 놀이 문화는 18세기 여항인(閭巷人)들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상업도시로 변모한 한양에서 중인층이 크게 세력을 키우면서, 이전에는 주로 양반들이 즐기던 문화가 중인층 이하로까지 확산된 것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 전시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2023.9.27.~2024.2.12.)에서는 문화예술이 융성했던 조선 후기 한양의 다양한 풍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K콘텐츠의 매력을 오늘날의 노래나 영화,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옛 한글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시 소개 바로가기

고은숙(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