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3호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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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 군데군데 있는 노란색 배경에 숨탄것들 진관우 작가가 검은색 옷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진관우 작가 주위에는 사자, 곰, 토끼, 너구리, 고양이 등 동물 그림이 진관우 작가를 둘러싸고 있다.

반갑습니다 “한글로 생물의 다양성을
알리고 싶어요”
숨탄것들 진관우 작가

서예, 조형물 등 한글을 소재로 미술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한글을 빼곡하게 채우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진관우 작가는 한글을 통해 생물의 다양성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숨탄것들’의 대표 진관우 작가를 만나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한글로 생물다양성을 알리는 작가이자 프로젝트 팀 숨탄것들의 대표 진관우입니다.

Q

‘숨탄것들’은 어떤 단체인가요?

A

숨탄것들은 ‘숨을 타고난 것들’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넘어 생물계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 뜻을 담아 생물다양성의 인식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글로 생물을 그리고 있고요. 미생물을 담거나 수중생물들, 자연의 소리를 각각 담는 팀원들을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 교육을 기획하는 팀원, 디자이너, 과학커뮤니케이터, 정보전달을 핵심으로 담당하는 팀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생물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검은색 상의와 안경을 쓴 진관우 작가가 탁상에 앉아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탁상 위엔 초록색 찻잔 두 개가 놓여있고, 탁 트인 창밖에는 나무와 건물들이 보인다.

Q

작품에 한글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한글은 민족성이 담겨 있으면서 심미적으로나 구성적으로도 잘 만들어진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한글이 생태계와 큰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한 종이 멸종되거나 사라지면 전체 생태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심각할 경우 복원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한글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한 단어를 보면 여러 음운이 있는데, 하나의 음운이 빠지면 그것은 명확한 단어라고 보기 어려우며, 때론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조차 힘들어지잖아요. 이런 부분이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한글’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왠지 모를 뜨거운 마음을 갖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 보호의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계속 한글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Q

멸종위기 동물을 그림 소재로 삼으신 이유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진관우 작가가 한글로 처음 그린 작품 ‘반달가슴곰’ 그림이다. 노란색 배경 안에 한글 ‘반달가슴곰’을 변형시켜 곰 모양의 형태를 만들었다. 진관우 작가가 한글로 처음 그린 작품 ‘반달가슴곰’

숨탄것들이 추구하는 바는 말 그대로 숨을 타고난 모든 것들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비단 멸종위기종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들이나 멸종된 생물들도 다룹니다. 핵심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위해서 저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멸종위기종이 제일 많이 언급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라는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더 인지하지 못하면 앞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생물들이기에 그런 위협에 맞닥뜨린 생물들이 더 많이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Q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봄까치꽃이라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장애인 비하 단어를 우리도 모르게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이 문제는 생물 종의 국명까지도 포괄합니다. 약 500종이 넘는 생물들이 국명에 장애인 비하 단어를 가지고 있어요. ‘벙어리뻐꾸기’, ‘문둥이박쥐’, ‘언청이고둥’, ‘앉은뱅이’부터 시작해서 심하면 ‘곰보병신옆새우’, ‘병신꼬마구멍벌’ 등 욕이 들어간 생물도 있고요. 이런 생물들의 이름이 개칭돼야 하지만 아직 연구도 부족하고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실정입니다.

진관우 작가의 작품 ‘봄까치꽃’ 그림이다. 초록색 배경 안에 파란색 꽃이 있는데, 꽃은 ‘봄까치꽃’이라는 한글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봄까치꽃’

이렇게 비속어들이 들어간 생물 이름 중 ‘큰개불알풀’을 ‘봄까치꽃’으로 개칭하자는 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칭 가능성이 더 많은 생물에게 퍼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더 나아가 장애인 비하 단어들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봄까치꽃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Q

한글로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기억나는 일화 같은 것이 있을까요?

A

지난해 ‘큰 뜻 가득, 숨탄것들’이라는 전시를 할 때 세종대왕의 어진을 그릴 기회가 있었어요.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분을 다시 한글로 재탄생 시켜드렸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고 뿌듯했습니다. 과학적이고 심미적으로 뛰어난 우리 ‘한글’이라는 소재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깊은 보람을 느끼며 이 문자의 탄생 덕분에 저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글을 쓰고 생활하는 것 같아서 그리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세종대왕 어진 그림이다. 임금 옷을 입은 세종대왕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세종대왕 어진 그림을 확대한 모습이다. 임금 옷 중간에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갈색 등을 이용해 ‘세종대왕’이란 한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진관우 작가가 그린 세종대왕 어진 / 곳곳에 한글로 빼곡한 세종대왕 어진 확대 모습
Q

지난달 한글날을 맞아 한글문화연대가 뽑은 ‘우리말 사랑꾼’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A

사실 책임감이 정말 크게 느껴졌어요. 스스로 올 한해를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나는 과연 올바르게 한글을 쓰고 있었는가?’라는 반성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만큼 누구보다 한글을 많이 그림으로 녹여낸 노고가 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수상 이후 스스로 최대한 우리말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우리말이 참 많아요. 앞으로는 이러한 우리말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고, 기록할 생각입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활동반경을 더 넓히고 싶어요. 환경을 아끼면서 우리 문화까지 알릴 수 있는 일도 많이 해 보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한국교육원에서 ‘한글 동물 그리기’ 수업도 해 보고, 각국의 보호시설을 방문해 위기에 처한 생물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생물다양성 교육과 한글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숨탄것들 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관우 작가가 ‘ㄱ’, ‘ㄴ’ ‘ㄷ’, ‘ㄹ’, ‘ㅁ’, ‘ㅂ’ 등의 한글 자음이 그려져 있는 작품들 앞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A

한글은 곧 삶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글을 이용해 말하고 움직이며, 행동합니다. 한글로 이해하고, 한글로 글을 쓰고, 한글로 그림을 그리며 공부하고, 한글로 경제 활동까지 합니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어떻게 발성하는지 알며,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은 한글이 유일합니다. 그만큼 제 삶에서 한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높고, 창의력과 상상을 발현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한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끼고, 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지켜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진관우 작가)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