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4호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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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이 사방으로 있는 하늘 위에 어린이들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엔 책 안에 풍선을 들고 있는 어린이와 팔을 뻗고 있는 어린이가 있으며, 왼쪽엔 책에 매달려 있는 어린이와 풍선을 양손에 잡고 매달려 있는 어린이가 있다. 오른쪽엔 책을 날개 삼아 떠 있는 어린이와 풍선을 등에 매고 양팔을 벌린 어린이가 있다.

소장품 이야기 100여 년 전 어린이들의 ‘우리 지역 사투리’ - 『소년』, 『어린이』 잡지를
통해
살펴보는 지역 방언

옛사람들은 어떤 말을 사용했을까요? 분명 우리가 현재 쓰는 한국어와는 소리도 어휘도 문법도 모두
다르게 썼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대중매체와 통신, 이동 수단 등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알기 어려웠을 테지요.
이번 소장품 이야기에서는 한글로 쓰인 『소년』, 『어린이』 잡지를 통해
100여 년 전 사용되었던 우리 지역 사투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처음 들을 적에는 귀에 낯설더니 오래 들으니 익어가더라.”
남해의 낯선 말에 대한 조선후기 학자 유의양의 기록

조선 후기의 학자 유의양(1718~?)은 1771년 남해로 귀양을 갔을 때 당시 생활과 보고 들은 것을 『남해문견록』으로 기록하였는데, 유의양이 현지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곁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배지의 집주인에게 음식을 할 때 지네가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줄 것을 당부했더니 집주인이 남해말로 “졍지를 육궁 비질ᄒᆞ니 념녀 마ᄅᆞ쇼셔”라고 했다는 겁니다. 옆 사람이 ‘부엌에서 매일 비질을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자 유의양은 방언이 재밌다며 본인이 알게 된 남해 방언을 죽 이야기합니다.

조선 후기 학자 유의양이 기록한 『남해문견록』 사진이다. 흰 배경에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조선 후기 학자 유의양이 기록한 『남해문견록』 사진이다. 흰 배경에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조선 후기 학자 유의양이 기록한 『남해문견록』 사진이다. 흰 배경에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 『남해문견록』, 18세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쥬인이 음식을 ᄒᆞ여 줄 제 내 ᄆᆞ양 진에 들가 념녀ᄒᆞ야 신칙(申飭 단단히 일러 조심하게 함)ᄒᆞᆫ즉 쥬인이 되답ᄒᆞ되 졍지를 육궁 비질ᄒᆞ니 념녀 마ᄅᆞ쇼셔 ᄒᆞ니 내 그 말을 아라듯지 못ᄒᆞ여 ᄒᆞ니 겻ᄒᆡ 사ᄅᆞᆷ이 ᄒᆡ둑ᄒᆞ여 닐오되 졍지란 말은 부엌이란 말이요 뉵궁이란 말은 ᄆᆞ양이란 말이요 비질란 말은 뷔질란 말이라 ᄒᆞ니 방언이 우ᄉᆞᆸ고 이ᄲᅮᆫ 아니라 너희라 말은 늑의라 ᄒᆞ고 저희라 말은 즉의라 ᄒᆞ고 겨집아희ᄂᆞᆫ 가산아ᄒᆡ라 ᄒᆞ고 오라븨 안해는 올케라 ᄒᆞ고 먹오라 말은 묵으라 ᄒᆞ고 아모일이나 아조라 말은 함부래라 ᄒᆞ고 아직이란 말은 당ᄉᆞ라 ᄒᆞ고 달나 말은 도라 ᄒᆞ고 밧비걸으라 말은 ᄑᆡᆼᄑᆡᆼ 거르라 ᄒᆞ고 ᄲᅩᆼ이라 말은 ᄲᅭᆼ이라 ᄒᆞ고 길경이란 말은 ᄇᆡ피장이라 ᄒᆞ고 기러기ᄂᆞᆫ 글억이라 ᄒᆞ고 병아리ᄂᆞᆫ 비가리라 ᄒᆞ고
오ᄉᆞᆫ 볼모라 ᄒᆞ야 핫오ᄉᆞᆫ 핫볼모, 홋오ᄉᆞᆫ 홋볼모, 겹오ᄉᆞᆫ 겹볼모, 긴오ᄉᆞᆫ 긴볼모, 져ᄅᆞᆫ오ᄉᆞᆫ 져ᄅᆞᆫ볼모라 ᄒᆞ고 화로ᄂᆞᆫ 화틔라 ᄒᆞ고 키ᄂᆞᆫ 쳥이라 ᄒᆞ고 옥슈슈ᄂᆞᆫ 강남슈슈라 ᄒᆞ고 지팡이ᄂᆞᆫ 쟉지라 ᄒᆞ고 지룡이ᄂᆞᆫ 거ᄉᆡᆼ이라 ᄒᆞ고 쇼로개ᄂᆞᆫ 솔방이라 ᄒᆞ고 다리우리ᄂᆞᆫ 다립이라 ᄒᆞ니 이런 방언이 처엄 들을 적은 귀의 서더니 오래 들으니 닉어가더라.

- 『남해문견록』 중에서

『남해문견록』에서는 남해에서 ‘병아리’를 ‘비가리’라 말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1446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용자례에서 ‘비육’이라는 표기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표준어 ‘병아리’를 일컫는 말은 ‘병아리, 비아리, 비애기, 빙아리, 뻬가리, 뼝아리, 삐가리, 삥아리, 삐갱이’ 등으로 각 지역마다 다양한데요, 같은 대상을 일컫는 말이 시간의 흐름과 언어공동체의 구획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변화하여 쓰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시의 남해 말로 소개되고 있는 ‘글억’ 또한 『훈민정음』의 용자례에 ‘그력’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대 표준어로는 ‘기러기’라고 부르고 있는 말이지요. 지역 방언은 이렇게 시공간에 따라 달리 변화해 왔는데요, 한글 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변화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어린이들이 소개하는 우리 고장의 말

잡지 『소년』과 『어린이』 독자들의 기록

자, 그렇다면 100여 년 전 어린이들은 어떤 말을 사용했을까요? 잡지 『소년』과 『어린이』의 한글 기록을 통해 당시 어린이들이 사용했던 말과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잡지들은 각 지역의 어린이 독자들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말을 적어 잡지 편집부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답장으로 도착한 내용을 잡지에 실어주었습니다. 당시 여러 지역의 말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국어학자들이 아닌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당대 우리말 풍경이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는 자료입니다.

『소년』은 1908년 당시 18세이던 최남선(1890~1957)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 만든 월간 잡지입니다. 「소년 통신」이라는 독자 투고 코너를 통해 각 지역의 소년들에게 자신이 사는 곳의 ‘명승, 고적, 풍습, 방언, 인물, 산물, 기이한 자연 현상, 학교 교훈, 동요, 전설’ 등을 적어 보내줄 것을 요청했는데, 소년들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으려면 언어와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은 총 두 차례 소개되었는데, 당시는 표준어가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지역의 말과 서울말을 함께 적어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소년』은 1908년 11월 1일부터 1911년 5월 통권 23호까지 발간 뒤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1908년 당시 18세이던 최남선(1890~1957)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 만든 월간 잡지 『소년』 제2권 제1호 (1909.1.1.) 사진이다. 낡은 책에 한글과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 『소년』 제2권 제1호 (1909.1.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1908년 당시 18세이던 최남선(1890~1957)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 만든 월간 잡지 『소년』 제2권 제4호 (1909.4.1.) 사진이다. 낡은 책에 한글과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 『소년』 제2권 제4호 (1909.4.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소년 통신」 방언
경상북도 안동군읍 근처 이삼십 리 동안에 ‘-껑’이란 방언이 있으니 서울말노 하면 ‘심니가’의 의(意)라. 가령 ‘오섯슴니가’라 할 것이면 여긔 사람은 ‘왓니ᄭᅥᆼ’이라 하고 ‘가심니가’라 할 것이면 ‘갓니ᄭᅥᆼ’이라 하오. 그럼으로 이곳 속담에 ‘안동읍장은 3ᄭᅥᆼ이면 파(罷)한다’ 하나니 ‘왓니ᄭᅥᆼ, 장 다 보앗니ᄭᅥᆼ, 갓니ᄭᅥᆼ’을 두고 말함이오. 인하야 경상도에 공통한 방언을 수수(數數) 통보 하오리다. 수ㅅ가락=술, 소=쇠, 함지박=방퉁이, 아버지=아배, 어머니=어매 (경북 봉화 강희목)

강원도 철원군읍 근지에서는 서울말노 ‘시오’를 ‘교’라 하나니 가령 ‘오시오’ 할 것을 ‘오교’라 하고 ‘가시오’ 할 것을 ‘가교’라 하오. (철원 강창희)

- 『소년』 제2권 제1호 (1909.1.1.)

「소년 통신」 방언
우리 시골서는 서울말의 ‘눈바라’(風雪)라 하난 것을 ‘눈분배’라 하난데 이는 호남일성(一省)의 공통한 방언일 듯하오. 인하야 호남방언을 멧멧 통보하오. 조곰=ᄶᅬ깨, 저즘게=아래, 하얏소=하얏지라오, 슴니가=곗는거라오, 뫼(山)=매, 허리ᄯᅴ=괴알이(혹 괴알ᄯᅴ), 다님=ᄭᅩᆺ댐이 (전북 익산 △△△)

본군근처에 ‘둥’이란 방언이 잇스니 서울말노 하면 ‘심니가’의 의(意)라. 가령 ‘오섯슴닛가’라 할 것 갓흐면 ‘오섯슴둥’이라 하오. (함경도 온성보통학교 김봉현)

- 『소년』 제2권 제4호 (1909.4.1.)

어린이 독자들의 사연에 의하면 당시의 서울말로 ‘오셨습니까?’라는 표현을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왓니껑’, 함경도 온성에서는 ‘오섯슴둥’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한국어 공동체이면서도 지역마다 말 끝의 표현이 다른 것이 재미있지요.

『어린이』 잡지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입니다. 1925년 『어린이』 제3권 제3호에서 각 지역 사투리와 유명 인물, 물건, 전설 등을 적어 보내 달라고 광고하였는데, 이를 보고 많은 독자들이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 제3권 제3호(1925.3.1.) 사진이다. 옛날 책에 한글과 한자가 적혀있다. ▲ 『어린이』 제3권 제3호(1925.3.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신현상 모집」 우리시골 사투리(방언) 다른지방사람은 들어도알지못할 사투리가잇스면 그사투리를적고 이것은무슨말이라고 써보내주십시요 ᄲᅩᆸ아서책에내고 상품드리겟슴니다

『어린이』 제3권 제3호(통권 26권)(1925.3.1.)

어린이들이 보낸 사투리는 제3권 제5호와 제7호에 모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37개 지역의 어린이 48명이 194개의 지역 방언을 보내왔습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 제3권 제5호(1925.5.1.) 사진이다.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옛날 책에 한글과 한자가 적혀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 제3권 제7호(1925.7.1.) 사진이다. 옛날 책에 한글과 한자가 적혀있다. ▲ 『어린이』 제3권 제5호(1925.5.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 현장 사진이다. 정면 화면엔 옛 복장을 한 사람들의 그림이 띄워져 있고, 그 아래엔 전통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앞쪽 전시장엔 고서들이 전시돼 있다. ▲ 『어린이』 제3권 제7호(1925.7.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 제3권 제5호(1925.5.1.) 사진이다.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옛날 책에 한글과 한자가 적혀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방정환(1899~1931)으로 대표되는 ‘개벽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 제3권 제7호(1925.7.1.) 사진이다. 옛날 책에 한글과 한자가 적혀있다. ▲ 『어린이』 제3권 제5호(1925.5.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전시 현장 사진이다. 정면 화면엔 옛 복장을 한 사람들의 그림이 띄워져 있고, 그 아래엔 전통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앞쪽 전시장엔 고서들이 전시돼 있다. ▲ 『어린이』 제3권 제7호(1925.7.1.),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우리 싀골 사투리」
조선사람이닛가 조선말은못알아드를말이업다고 누구던지생각하기쉬웁지만은 여러분이 자긔본향을 ᄯᅥ나서 멀듸먼 ᄯᅡᆫ싀골에 가보십시요 가튼조선사람의말이건만 알지못할말이 퍽 만히 잇슴니다.
이것은 결코자랑할일이 못되는것이요 결국 교육이 골고루펴지지못한데에 ᄭᅡ닭이잇는일입니다.
이제 『어린이』에 전조선소년소녀대회가열린긔회에 남의곳사투리를알아두고 자긔사투리를알리기위하야 각각몃마듸씩의 알아듯지못할 사투리를 나와서 말슴하기로 하엿슴니다. (박수대갈채)

『어린이』 제3권 제5호(1925.5.1.)

5월호소년소녀대회ᄯᅢ에 팔도사투리는 자미잇게닑엇슴니다. 이제 우리싀골사투리로 그ᄯᅢ에 ᄲᅡ진것을 적어보냄니다.
이외에 ᄯᅩᄲᅡ진것이잇스면 적어보내주시기바람니다
편즙실

『어린이』 제3권 제7호(1925.7.1.)

어린이들이 보내온 사투리를 몇 개만 살펴보면, ‘그네’를 평안 용천에서는 ‘거늘’이라고 하고, 경상 안동에서는 ‘궁긔’라 합니다. ‘팽이’를 전라 광주에서는 ‘ᄲᅢᆼ도리’, 경상 진주에서는 ‘핑빙이’라 합니다. ‘송아지’를 부르는 말도 다릅니다. 충청 제천에서는 ‘씨앗치’, 경상 영주에서는 ‘쇠치’라 합니다. 같은 대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표현은 같지만 지시 대상이 다른 경우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충청 제천, 경상 창원에서는 ‘할아버지’를 ‘할배’라고 하지만 평안 삭주, 함경 경성에서는 ‘큰아버지’라고 합니다. 표준어로 ‘아버지의 형’은 ‘큰아버지’라고 하지만 평안, 함경 지역에서는 ‘맏아버지’라고 합니다.

표현은 같은데 의미가 완전히 정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평안 삭주에서는 ‘비싸다’를 ‘싸다’고 말합니다. 표준어로 ‘싸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말로는 ‘눅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평안 삭주 ‘혹게(대단히, 혹은 제법)’, 평안 용천 ‘나좌(오늘 저녁)’, ‘달마구(단추)’, 충청 논산 ‘샴(우물)’, ‘놉(일꾼)’, 경상 진주 ‘불국새(부엉이)’, ‘운붕(우물)’ 등의 말도 정서와 문화가 담겨 있는 정겨운 말들입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정체성을 담은 지역 방언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해 낯설기도 하지만,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산입니다. 한글 창제 이후 기록된 한글 방언 자료들을 보면 국어가 변해온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2024년 기획전시를 통해 방언에 담긴 언어문화 다양성과 한글의 가치 조명

국립한글박물관은 2024년 4월에 지역 방언을 주제로 기획특별전을 열 계획입니다. 방언은 지역민들의 의사소통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정서와 삶을 오롯하게 담고 있는 풍부한 삶의 양식입니다. 방언을 통해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한글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문화 다양성의 보물 창고와도 같은 방언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 이번에 살펴본 『소년』, 『어린이』 잡지뿐만 아니라 노래, 유람기, 문학 작품, 구술 자료,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에 선보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 4월에 열리는 방언 전시도 기대해주시고 많이 찾아주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 문영은 학예연구사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 김광기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