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5호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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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 번역가가 양손을 모아 도서 『모비 딕』을 들고 측면으로 비스듬히 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뒤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장들로 꽉 차 있다.

반갑습니다 한글과 함께 350권
번역의 긴 여정을 함께한
김석희 번역가

각 나라 간 문턱이 좁아진 요즘에는 해외의 책들을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기 위해선 번역 작업이 필수적인데,
독자들을 위해 35년간 한글 번역 작업에 매진한 사람이 있다.
반갑습니다 1월호에서 김석희 번역가를 만나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 김석희입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글쓰기와 번역을 병행했지만, 10년쯤 지난 뒤에는 번역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그렇게 35년 세월을 작업하다 보니 그동안 번역한 책이 350권을 넘겼는데, 많이도 했구나 싶어 놀랍기도 하고 그 길밖에 모르고 살아온 우직함이 때론 민망하기도 합니다.

자주색 셔츠를 입은 김석희 번역가가 양손을 모으고 앉아있다. 그의 앞에는 『쥘 베른 걸작선』 5권이 가지런히 놓여있으며, 그의 뒤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장들로 꽉 차 있다.

Q

한글 번역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A
김석희 번역가의 첫 번역 작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표지이다. 분홍색 배경의 표지엔 파란색, 빨간색 머리가 섞인 여자가 그려져 있으며, 그녀의 머리엔 무수히 많은 하얀색 선들과 하얀 꽃이 한 송이 그려져 있다. 김석희 번역가의 첫 번역 작품,
『프랑스 중위의 여자』

고등학교 때 문학에 뜻을 두고 세계고전을 많이 읽었는데, 읽다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심 ‘내가 나중에 외국어를 익혀서 직접 읽어보겠다’라고 마음먹곤 했지요. 1980년대 초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즈)를 번역한 게 사실상 첫 번째 작업인데요. 그때만 해도 제가 번역가로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에 『화산도』(제주도 4.3사건을 다룬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를 번역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제 고향 문제를 다룬 소설이어서 번역에 성의를 쏟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새삼 번역 일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Q

번역 일을 하시면서 느낀 한글만의 장점이 있나요?

A

글 쓰는 이들은 대개 느끼고 있을 테지만, 한글은 정말 뛰어난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글은 뜻이든 소리든 표현하지 못할 게 없을 만큼 그 쓰임새가 다양하고 능란합니다. 저는 한자 세대여서, 한글 전용이 시행될 때만 해도 글쓰기에 불편함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양상을 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자에서 차용한 표의적 기능과 한글 본래의 표음적 기능이 어우러지면서, 그 시너지 효과가 더욱 크게 발휘되고 있지요. 의태어와 의성어의 표현과 표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요즘 젊은 세대에 유행하는 축약어의 활용도 때로는 기발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한글은 ‘3.4조’나 ‘7.5조’의 리듬을 살리면 낭송하기에도 아주 좋은 문자입니다. 저도 번역을 마치면 음독하면서 문맥의 리듬을 조정하는데, 그러면 번역한 글이 한층 더 눈과 마음에 와닿게 됩니다.

Q

번역할 작품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번역가로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번역을 시작하던 무렵은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면서 번역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던 때였고, 또한 군사정권이 끝난 뒤 출판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던 때여서 출판사들도 좋은 번역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지요. 그런 때에 신춘문예 당선과 불문학과 출신의 소설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랬는지, 출판사들도 저에게는 괜찮은 책들만 번역을 제안한 편이었습니다.

짙은 파란색 재킷과 회색 셔츠를 입고 하얀색 중절모를 쓴 김석희 번역가가 오른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고 있다.

그렇긴 해도 제 나름의 기준이 없진 않았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그 무렵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앞으로 크면서 읽을 만한 책’이라는 정도의 선은 긋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동안 350여 권을 번역했는데, 도서 업체에서 검색해 보니 지금도 300여 권이 판매되고 있더군요. 책을 많이 번역한 것이 꼭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읽을 만한 책들을 번역했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작품을 번역하실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원어민도 아니고 외국에 살아본 적도 없어 영어든 불어든 일어든, 해당 언어가 현지에서 어떤 변용을 거치고 있는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체감하거나 체득할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언어란 시대와 세대에 따라 그 쓰임새에 끊임없이 변용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뉘앙스까지 찾아서 번역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못해서 엉뚱하거나 어색한 번역을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이런 사정은 번역가에게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모비 딕』(허먼 멜빌)은 도중에 번역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어요. 이 소설은 곳곳에 온갖 비유와 상징이 널려 있고, 축약과 도치, 비문(非文)의 문장들(예를 들어 19세기 중엽의 미국 영어)이 난무하는 까닭에 원서를 제대로 읽는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어 마치 덤불 무성한 숲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거든요.

Q

한글 번역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 같은 것이 있을까요?

A

폴 오스터라는 미국 작가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그의 소설 『빵 굽는 타자기』를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작가를 꿈꾸지만, 글쓰기는 여의찮고 영혼까지 더럽히는 궁핍을 번역 일로 버티며 근근이 살아가는 풍경이 너무도 처연해, 제가 겪은 경험이 생각나 번역에 더욱 열과 성을 쏟았지요.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은 김석희 교수가 팔짱을 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왼쪽 뒤엔 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성이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책이 나오고 몇 달 뒤에 한 독자가 출판사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번역에 실수가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어요.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독자는 이 문장을 원문과 대조해 실수를 찾아낸 것입니다. ‘번역자는 policeman(경찰관)을 정치인으로 옮겼는데,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실수일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습니다. 명색이 번역가라는 자가 중학생도 아는 단어를 잘못 읽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 봄에 일본에 갔다가 참 희한한 일을 겪었습니다. 종종 일본에 가면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곤 하는데, 마침 『빵 굽는 타자기』가 번역되어 나왔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호기심도 들어 책을 펴들고 훑어보았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일본어 번역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번역자는 시바타 모토유키라는 도쿄대학 출신의 영문학자이고, 폴 오스터 전문 번역가로 알려진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때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지난 한글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한글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A

다양한 국가의 지식과 정보를 들여오는데 첨병 역할을 맡는 것이 바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물의 교류는 번역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번역의 실행은 외국 문자를 해독하고 그것을 우리 한글로 옮겨야 완결됩니다. 그런 만큼 외국어 능력을 갖추는 것 이상으로 우리 한글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고, 이를 위한 노력은 한글의 서술력과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어휘력과 문장력을 갈고닦는 수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요. 번역가는 번역에 임할 때마다 외국어 단어와 구절들의 의미를 원서의 문맥에 맞춰 해석하고 판단한 다음, 그 의미를 한글의 문맥 속으로 가져와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번역가의 한글 사용은 작가나 시인의 한글 사용 이상으로 치열한 고뇌와 신중한 선택의 산물이며, 그래서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라색 체크 셔츠를 입은 김석희 번역가가 양손을 깍지를 낀 채 바위에 비스듬히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뒤엔 꽃들과 나무, 풀이 무성히 피어 있다.

그러나 번역은 태생적으로 ‘그림자 작업’입니다. 원작의 그늘 속에 숨어서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해내는 일이지요. 이번에 한글 유공자로 선정된 것은 이런 그림자 활동에 조명을 비추고 그 역할을 새삼 평가해 준 것이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열심히 작업하는 후배들도 많은데, 그들을 대표해서 상을 받은 기분도 들었고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10여 년 전에 제주로 귀향해서 자연 속에 묻혀 사느라 번역일은 예전만큼 하지 못합니다. 나이도 들었고요. 그래서 새 책을 번역하는 대신 예전에 번역한 책을 다시 번역하는, 그러니까 고치고 다듬는 일을 주로 하고 있지요. 재작년엔 『쥘 베른 걸작선』을 청소년용으로 펴냈는데, 손자한테 읽어주는 기분으로 다듬었습니다. 작년엔 『모비 딕』(허먼 멜빌)을 크게 손봤는데요. 처음 번역할 때는 시간에 쫓기고 글에만 갇힌 나머지, 미처 보지 못한 면들을 좀 더 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올 2월 출간을 앞두고 한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간간이 하면서 책과 번역을 벗 삼아 살고 싶은 게 소망이고 계획입니다.

김석희 번역가의 번역 작품 『쥘 베른 걸작선』 5권이 위에 2권, 아래에 3권 배치돼 있다. 책마다 쥘 베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각각 다른 머리 색깔과 수염 색깔로 그려져 있다. 김석희 번역가의 번역 작품 『쥘 베른 걸작선』

Q

마지막으로 번역가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저는 평생 글만 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나에게 한글은 생활의 방편이었으며 삶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한글이라는 연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 덕에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요. 또한 어떻게 하면 한글을 좀 더 아름답고 옹골차게 표현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350권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무난하게 지나온 것은 한글이 동행해 주었기 때문이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진 출처 : 김석희 번역가)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